조남철 이창호 이후

각 지역마다 유독 특정 분야에서 돋보이는 이들이 있다.

 

예를들면, 경남 창녕은 작은 군 지역에 불과하지만, 정치권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 국회의원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전남 고흥군의 경우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김일, 복서인 유제두·백인철 등 힘이 센 사람이 많다.

 

경기도 이천은 정치주먹 이정재, 유지광을 비롯, 경호실장을 지낸 곽영주·차지철 등 희한하게도 권부 주변의 인사가 많다.

 

그런가하면 내로라하는 재벌은 경남 진주 출신이 많고, 사무관 이상 고위 관료는 유배지로 유명했던 경남 남해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북의 경우 조선시대 이래, 의정부와 6조 등 요즘으로 치면 내각에는 많지 않았고, 사간원·홍문관 등 소위 언관쪽에 많았고, 일제시대 이후에도 언론, 문화예술계 등에 많이 포진한 특징이 있다.

 

박권상, 조세형, 최일남, 박실, 김원기 등 이름만대면 알만한 언론계 원로중 전북 출신은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도 광복이후 전북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있으니 바로 바둑의 메카라는 점이다.

 

부안 출신인 조남철 초대 국수는 1945년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 한국 현대 바둑의 초석을 닦았다. 조 국수 이외에도 전북출신 이창호 국수, 정수현 9단, 강훈 9단, 최규병 9단 등 프로와 아마바둑의 강자가 즐비하다. 부안 줄포에 바둑공원이 있는게 심심해서 그냥 있는게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가 “바둑 두실줄 아십니까”하고 묻자, “모릅니다” 했다고 한다. 그러자 상대가 말을 턱 놓으면서 “그럼 장기는 둘줄 아는가”하더란다. 그것도 모른다고 하자, “너 그럼 고누는 할줄 아나”하고 하대를 하더란다. 같은 유흥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바둑이 어느 정도의 격을 갖춘 기예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장 바둑에서 일본식 현대바둑으로 형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우리 조상들이 바둑을 얼마나 품격있게 여겼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한국기원이 최근 인공지능의 침공에 맞설 바둑인을 양성하는 소위 ‘바둑인 10만 양병’을 위해 나섰다. 한국기원은 1000개의 교실에서 배출한 4만 여명의 수강생들이 인공지능시대에도 바둑의 가치를 지켜낼 ‘현대판 10만 양병’의 전초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과연 바둑의 메카 전북에서 조남철, 이창호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올지 궁금하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