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교원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

▲ 전순자
시대가 변하는 요즈음, 직업에 대한 인식도 급변하고 있다는 걸 교직 사회에서도 느낀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말하던 ‘군사부일체’라는 고어적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존경심이 담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늘 교사들에게 자랑스러운 표현이었다. 우리 부모는 적어도 자녀들 앞에서는 ‘아무개 선생’이라 호칭하지 않았고 반드시 ‘선생님’이라 했고 우리 세대도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님들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어떤 말로 호칭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모는 ‘선생님’이라고 존경의 뜻을 담아 지칭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매스컴을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우울해질 때가 많다.

 

요즘 학부모 중에는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서라도 적어도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를 자기 집안의 하인을 다루듯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학교에 찾아와서 교사에게 삿대질하면서 훈계조로 말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붓거나 신체적 가해를 하는 학부모도 있다는 교단의 현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필자는 이제 머지않아 정년을 앞둔 사람으로서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본다. 그 시절 함께 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은 아이들을 정말 자식처럼 여겼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자기 반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보겠다고 퇴근 시간 가까이 데리고 앉아 부족한 공부를 시켰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사비를 털어 옷을 사주고 신발도 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자기 반 아이들의 집까지 일일이 방문하여 가정 형편을 살피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의 손이 미처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손발을 씻겨 주고 머리를 감겨주면서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학부모들 또한 교사는 자기 자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참으로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항상 대해 주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사들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같지 않다.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나치다 싶을 만큼 학생 인권은 강조하고 있는데 교사의 인권은 추락하고 있어 일부 학부모들이 이를 악용하고 존중하지 않은 풍토가 그중 하나라 생각된다.

 

또 사회적 분위기도 교사 입장에서 소극적인 지도를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예전처럼 학생들의 손발을 씻겨 주고 머리를 감겨주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원은 성추행으로 고발될 수 있다.

 

예전에는 일기장을 통해 반 아이들의 분위기를 짐작하고 아이들의 고충을 파악하여 해결해 주던 일도 많았었는데 이것이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단정 지어지면서 일기 검사는 물론이거니와 이젠 아이와 단둘이 앉아서 상담조차 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되었다. 한마디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믿으면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교사들은 선생님으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가다듬고 먼저 선생님과 상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보면서 배운다. 부모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분명 언젠가는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부모들이 선생님께 했던 방식으로 부모를 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정으로 존중받는 교직 사회는 교사와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학생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생과 교사의 소중한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기대해 본다.

 

△ 전순자 씨는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로 익산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익산 망성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