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읽어 봐, 엄청 재밌다.” “이건 표현이 좀 지독한데, 헐~.” 초등학교 4∼5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남짓한 열 댓 명 아이들이 와글바글 순전 입으로 책을 읽고 있다. 책마을해리 운동장 끝 나란히 선 다섯 그루 꿀밤나무 플라타너스 아래였다. 짙은 나무 그림자 커다란 티피텐트 두 개 사이에 올망졸망 놓은 작은 북 텐트, 책 파라솔, 책 의자와 매트 들에 아무렇게나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
폐교된 지 내일모레면 20년, 학교의 소란이 아득한 이 곳에 그 귀한 아이들이 떼를 지어 책을 읽느라 해 기우는 줄 모른다. 이들의 정체, 2017인문독서예술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다. 50명 남짓 대한민국 곳곳에 흩어져 살던 친구들이 〈책마을 만화학교〉 타이틀 아래 2박3일 모였다.
하루 종일 나무 그늘 아래서 뒹굴뒹굴 책만 읽느냐고? 그것도 좋고도 좋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다. ‘만화’다. 우리가, 책으로 눈으로 다른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읽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다시 이야기로, 특히나 그림으로 풀어내 칸에 가두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든 칸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려는 것이다.
△만화가 좋아 전국에서 모인 50여 명의 아이들
책마을만화학교는 3년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심혈을 다해 진행해오고 있는 인문독서예술캠프 책마을 버전이다. 작년까지 100명 이상, 한두 차례 큰 규모 독서캠프로 진행해오던 것을, 40∼50명 단위 4∼5회로 진행하는 새로운 버전을 시도한 것이다. 독서를 청소년, 청년, 가족의 공간으로 되찾자는 노력이 조금씩 다양한 빛깔로 번진다. 40명 청소년 참가자를 만화선생님, 책마을 선생님 열세 분이 함께하며 독서부터 다양한 지역의 인문생태자원 체험(하기)과 쓰기(그리기가 더 부각된), 그리고 마침내 펴내기(출판)까지를 돕는 것이다.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40명 정원을 넘겨 진행한 ‘핫한 여름캠프’ 책마을만화학교. 책마을해리로는 올해가 두 번째 만화학교다. 작년 학교를 마치고 만화책 『넌 너, 난 나』를 출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3일 동안 이어지는 만화학교 일정을 따라간다.
△읽기만 하던 것을 쓰고 출판하는 주인공으로
첫날 첫 일정은 계약서 작성으로다. ‘출판권설정계약서’, 독자들에게 생소한 계약서다. 저작권자가 출판권자, 출판사와 계약하는 서식이다. 만화학교 아이들은 이제 만화의 독자가 아니라 저자가 되는 역할 바뀜 마법공간으로 들어선다. 저자 사인(서명)을 멋들어지게 하는 아이들 눈에 진한 호기심이 비친다. 출판권설정계약서에서 ‘갑’은, 저작권을 가진 아이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둠나누기다. 나이에 따라 파랑, 초록, 주황, 연두, 분홍까지 모두 다섯 모둠이다. 잘곳 머물곳 먹을곳 놀곳에 대해 살피고는 바로 캐릭터 공부에 들어간다. 공부라기보다는 놀이다. 자기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찾고 그려보고 그려보고 그려보고,다. 저마다 다양한 캐릭터가 태어난다. 나는 이렇게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습으로도 세상과 만난다. 우리가 자녀로, 어버이로, 학생으로 교사로, 관계에 따라 역할이 변하듯이.
책속에서 길을 찾는 진로탐색, 『나는 지하철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나고는 다시 ‘나’로 돌아오는 여행을 마친다. 이제 비로소 만화로 향한다. 만화가 갖는 여러 가지 속성 이야기, 만화기법과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림 그리는 재주(이것을 테크닉, 혹은 스킬이라고 한다)보다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다. 이야기불변의 원칙을 다시 확인한다.
해는 서편으로 기울기를 늘어뜨리고, 이제 형님들과 아우들이 편을 나눠 한편은 갯벌놀이(바다물놀이), 한편은 만찬을 준비하는 요리사놀이에 접어든다. 첫날은 형님 먼저 요리사다. 형님들 솜씨는 짜장밥, 난생처음 양파를 썰어보는 친구들은 이구동성, ‘엄마’를 외친다. 이 매운 일을 맨날만날 하는 우리 엄마 생각이 얼마나 간절할까. 만화학교 식탁에 오르는 밥은 특별하다. 자연식당 청미래(민형기 대표) 도움으로 오곡통곡식으로 차린다. 작은 도정기에 오색 벼를 넣자, 트트특 현미 쌀이 되어 나오는 신기한 체험부터 만찬준비가 시작된다. 다음날 만찬은 아우들이 준비한 스파게티였다. ’이 솜씨,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자랑해보렴. ‘
밤이다. 이제 이야기를 짜는 시간이다. 이야기가 사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이야기의 틀을 스케치로 표현하고 이야기와 그림 언저리에서 서성대다가 잠깐 앉았다가 한다. 마지막 일정은 만화일기 한편 쓰기, 꿈에서도 만화라니.
△내 마음, 내 몸을 향한 여행은, 이제 바깥 세상으로
만화학교 둘째 날 일정은 몸 여행 마음여행으로 시작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 몸 안 여행으로 시작한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몸 안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의념(意念)여행이다. 오전 어제 못다한 스케치를 마무리한다. 생각이 좀 빠르고 손이 조금 빠른 아이들 몇은 벌써 색칠에 들어가 주위 아이들의 분노 대상이 된다. “얘야, 살살하렴.”
오후 만화선생님 가운데 대표교사 이지훈 작가와 함께 작가와만남 시간, 만화작가로 사는 일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그런데, 연봉이 얼마예요?”
그림놀이시간, 어제 그렇게 궁리궁리했던 자신의 캐릭터로 캐릭터 버튼 만들기, 만화 책갈피를 만들기를 통해 책마을과 인문독서캠프 추억을 기억의 갈피에 소중하게 챙겨놓는다.
질세라 아우님들 실력발휘 만찬 뒤에는 캠프파이어와 요즘아이들다운 밤놀이가 이어진다. 실컷 놀아야 후회없는 법. 마지막 날이다. 언제 다시 우리가 우리 안으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여행으로 시작한 하루는, 못다 그린 이야기, 그림 채색을 완성하고, 마침내 책에 들어갈 저자 소개글쓰기까지다. 3일 대장정 마무리다.
△책마을 이틀밤 삼일낮 기억을 온몸 온마음으로
전국 곳곳에서 왔듯이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돌아가는 아이들이 전라북도가 가진 책의 문화, 고창이 가진 생태인문자원, 책마을 기억을 온몸온맘으로 새겨놓았을 것이다. 이미 끝 난 시인학교 참가자들은 물론일 테다. 이 신나는 책놀이 책쓰기가 여기서 끝일까? 천만에다. 매주 후반 조월례 어린이책평론가와 서평학교, 권오준 생태작가와 생태학교, 이억배 그림책작가와 그림책학교가 9월 첫 주까지 이어진다.
“우리도 이렇게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며칠 책만 읽고 놀았으면 좋겠다.”
책마을인문독서예술캠프 참가하는 친구들을 데리러 온 어버이들 이구동성 하는 말이다. 살다가 언제 다시 이 전라도 구석 바닷가 작은 폐교 책마을에 오겠는가. 마음 한켠에 작게 나무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불리고,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책을 펴 드시라. 마음의 북텐트 하나 마련하시라.
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