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서점은 잠들지 않는다. 새벽까지 환한 불빛을 내뿜으며 거리를, 사람들을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서점의 풍경은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이색적이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책에 빠져있는 모습, 종이 위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모습, 동그랗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색적인 행사,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진행되는 ‘심야책방’은 북스포즈의 대표적인 이벤트다.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6시간이나? 그것도 불금에 누가 책을 읽으러 오겠어?” 사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행사다. 하지만 놀랍게도 10회를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 선착순으로 조기 마감됐다.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자면,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까지 자유 독서를 한다. 읽고 싶었지만 이런 저러한 이유로 읽지 못했던 책을 가져오기도 하고,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약 3시간이 지나면 독서가 지겨워지는데 이때 서점에서 제공하는 간식과 전주 수제맥주를 마시면서 환기의 시간을 갖는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심야토크를 한다. 심야책방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모여 그날 정해지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책과 관련된 주제를 진행할 때도 있지만, 일상과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 3가지는 무엇인가요’, ‘5년 후, 책을 낸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싶나요?’,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무더운 7월에는 공포 팟캐스트를 들은 뒤 ‘귀신보다 무서웠던 인생의 경험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심야책방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코너는 단연 심야토크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자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또는 책을 좋아한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을 예측하기 어려운데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부터 들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우(杞憂)다. 토크가 시작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토크에 참여하는 나 스스로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한다.
모두가 진지하게 토크에 임하다 보면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껍질을 벗어던진 진짜 소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제법 따뜻하다. 노력해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다. 모임에 이름을 붙이자면, 느슨한 연결 또는 느슨한 모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시곗바늘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대화는 이어진다.
어쩌면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의 검열 없이 그 순간 느끼는 그대로 발설할 수 있다. 가끔은 입이 아니라 가만히 들어주는 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주위에는 “합격은 했니?”와 같은 결과에 대해 조언하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많은 사람들이 느슨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에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일상에 치일 때 여행을 떠올리는 것도,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심야책방에 관한 포스트를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 중이다. 가장 최근에 올린 ‘한낮의 책맥’은 4일 만에 조회수 3,270을 기록했다. 혼밥, 혼놀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의 접촉은 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꾸미지 않아도 되는,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노유리 북스포즈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