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아리랑' 속 배경을 찾아서] 김제~삼례~군산 이어지는 일제 수탈의 역사와 마주보다

문학관·문학마을 전시품 / 민족의 애환 꿈틀거리는 듯 / 쌀 수탈 증언하는 미곡창고 / 문화공간·교육의 장 탈바꿈 / 근대역사 교육벨트 조성 / 이야기 스민 공간 만들어야

▲ 김제 아리랑문학관에 전시된 조정래 작가의 군산항 스케치.

‘초록빛 싱그러움을 뒤덮으려 들판에는 갯내음 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그리고 그 두껍고 칙칙한 구름덩어리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꿈틀대고 뒤척이며 뭉클뭉클 커져가고 있었다.’

 

 

〈아리랑〉 1권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들판을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 불렀다. 이는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이라는 뜻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공간적 무대가 된다. 갯내음 섞인 바람은 서해로부터 불어오고 신작로와 군산선은 그 들판을 가로지르며 군산항으로 내달린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서 나오는 나락들은 실어 나르기 좋은 두 개의 길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첫 번째 수탈의 대상이 됐다.

 

그 수탈지였던 곳을 배경으로 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을 집필했다. 소설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지에도 수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 소설 숨결이 깃든 ‘아리랑 문학관’

 

필자는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에서부터 삼례문화예술촌 그리고 대야의 주조장과 군산 내항까지 하루코스로 답사를 했다.

 

오전 8시 30분에 군산에서 출발해서 김제 아리랑 문학관까지는 45분이 소요됐다.

 

문학관 1층에 들어서자마자 유리관 속에 들어있는 원고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원고 더미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징게 맹개 외에밋들과 군산항에서 그리고 만주와 하와이에서 살아갔던 나라 잃은 자들의 애달픈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벽에는 〈아리랑〉 내용들이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실재 현장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시선이 멈추어선 곳 마다 나라를 잃은 조선 백성들의 지난한 몸부림을 시간의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조정래 작가의 글을 쓰기 위한 스케치들이 전시되어 있다. 월명산에서 내려다 본 군산항의 전경들에는 멀리 보이는 장항의 굴뚝과 째보선창의 민야암 등대까지도 자세히 그려놓은 것을 보고 발로 쓰는 조정래 작가의 부지런함에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아리랑〉 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만주와 러시아 그리고 하와이 등 모든 곳에 가서 주인공들 입장이 되어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그 이야기를 소설속에 담아놓은 진정성과 인간애에 감동의 전율이 느껴졌다.

▲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김제 벽골제 옆 너른 들판.

아리랑 문학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벽골제가 보인다. 벽골제가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제가 욕심을 부릴 만한 쌀의 소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벽골제를 뒤로 하고 〈아리랑〉 속 주인공들이 살았던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 외리 마을에 만들어진 아리랑 문학마을로 이동했다.

 

△ 서민 생활상 복원 ‘아리랑 문학마을’

 

아리랑 문학마을은 〈아리랑〉속에 나오는 근대 수탈 기관인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등이 실물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각종 도구들 나침반, 카메라 측량도구, 등사기, 망원경등이 전시 되어있다. 하나같이 악행의 도구로 쓰였던 것들이다. 재현한 시설물들을 통해서 일제수탈, 강제노역, 소작쟁의, 독립운동 등의 우리 근대사를 한 자리에서 배울 수 있다.

 

물론 내촌 마을은 소박하게 소설 속 내용을 근거로 복원되어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주요 인물은 손판석, 지삼출, 감골댁, 송수익 등이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조그만 야산을 뒤로 하고 너른 들이 펼쳐진 초가집들이 옹기옹기 모여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된 주인공들의 삶은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다. 손판석은 의병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활동하면서 갖은 고생을 한다. 지삼출은 친일파인 장칠문의 나쁜짓에 보복을 하려다 주재소에 끌려가 채찍질 당하고 후에 의병으로 활동을 한다. 감골댁은 빚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간다. 가난 때문에 큰 딸이 부잣집에 첩으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굶어도 함께 굶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한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감골댁의 맏아들 방영근이 가서 노예 같은 우리의 미주지역 이민사. 그것은 풍전등화의 국운 하에서 가장 억눌리고 착취당한 조선 민중들이 신음소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은 김제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군산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필자가 처음에 출발했던 군산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미곡창고가 있던 삼례문화예술촌에 들렸다.

 

△ 근대와 현대가 공존 ‘삼례문화예술촌’

 

40뿐쯤 이동하니 삼례문화예술촌에 도착했다. 미곡창고 4동이 있었다. 농협창고라는 옛 간판글씨가 창고 벽에 색 바랜 채로 남아있다. 한 동은 커피숍으로 한 동은 책 전시장으로, 한 동은 옛 인쇄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한 곳은 목공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농민의 피땀어린 쌀들이 가득히 쌓여있던 창고가 문화 공간이 되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가득히 쌓인 나무판들이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건물로 무작정 들어갔다. 그곳은 목공소였다. 오래된 지붕의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창고에 쌀 대신 나무 향기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다른 용도의 다른 모양으로 손때가 묻은 도구들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고 맞은편에는 잘 짜여진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옛날 빼앗겼던 슬픈 양식들이 담겨있던 창고가 지금은 개성 가득한 가구들의 냄새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역사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답사여행에서의 체험일 것 같다.

▲ 커피숍 및 문화공간으로 변한 삼례 미곡창고.

다시 처음 출발했던 군산으로 이동했다. 40여분 후 도착한 곳은 대야의 주조장과 대야농협창고로 사용 중인 미곡창고이다. 일제는 1934년 밀주법을 만들어서 전통 곡주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술 제조를 그들이 하면서 세금으로 수탈을 해 가고 조선 농민들의 흥과 정담을 나눌 기회도 박탈해 갔다.

▲ 군산 대야 주조장.

△ 콘텐츠 연계·이야기 엮기 필요

 

조정래 〈아리랑〉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김제와 삼례를 지나 전군가도를 따라서 대야에 이르고 군산구도심을 거쳐 내항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서북 지역인 징게맹갱외에밋들과 전군가도가 연결 된 그 수탈의 길 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아리랑 이야기를 늘어지게 듣고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김제의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문학마을 그리고 삼례의 미곡창고를 활용한 문화예술촌 군산의 근대역사경관지구 등 이미 각 지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콘텐츠 공간으로서 활용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

지난해 2월 매일경제에서 청소년에게 쌀 수탈의 역사를 가르치는 ‘쌀 수탈 근대역사 교육벨트 조성사업’으로 전북 김제시와 군산시, 완주군이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지역발전에만 올인(All in)을 하는 입장에서 연대를 통한 콘텐츠 개발은 매우 고무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필자 역시 ‘쌀 수탈 근대역사 교육벨트 조성사업’에 공감한다. 따로따로가 아니라 어느 한 곳에서 출발을 해도 세 곳을 지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답사를 하고 나면 한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생생하게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난 듯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가 스민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