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은 사전적으로 ‘쓸데없이 헤프거나 막된 것’을 일컫는 관형사다. 허튼수작, 허튼걸음, 허튼뱅이, 허튼계집, 허튼춤 등으로 쓰인다. 허튼춤(허튼가락)은 일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고 즉흥적인 춤(가락)일 것이다. 건축에서 사용하는 용어 허튼귀는 부정형의 물매로 이뤄지는 귀를 이른다. 창조적 변화다.
한자 서예에서 필사체의 정형은 필법에 따라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다. 서예가들은 이 규정 안에서 ‘왕희지’ 등 특정 서예 대가가 완성한 서체를 따라 쓴다. 그 표준을 어긋나면 허튼 것이 되니, 어느 서예 대전 응모작가가 전통적 필법을 전수받아 온 스승의 서체를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허튼체를 구사했다가는 ‘탈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서양 음악이든, 우리 전통음악이든 그 정해진 틀에서 움직인다. 이미 완성된 작품의 틀을 벗어나면 ‘틀린 것’이 된다. 고수 예술가들은 틀을 벗어난 듯 벗어나지 않은 듯 하게 멋을 부린다. 편곡이다. 하지만 신진이나 일반인이 멋과 기교를 부리면 자칫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허튼’은 사전적으로 ‘틀’을 벗어난 것을 이르지만, 다양성이라든가 자유분방함에서 미적 가치 등 새로움을 추구하는 뜻을 담고 있다. 울타리는 경계선이기도 하고, 뭔가를 가둬두는 틀이다. 안전하다와 답답하다가 혼재한다. 인간은 틀을 깨고 나갈 때 구만리 장천을 날아오르는 자유를 만끽한다.
대중적 ‘글자체(서체, 폰트)’에도 허튼체가 있다. 활자나 컴퓨터 서체들은 정형화 된 것이지만, 수많은 불특정 대중들이 연필 등으로 쓰는 글씨는 모두 허튼체다. 정사각형에 딱 들어맞게 쓰는 글씨, 늘어진 글씨, 뒤로 나자빠진 글씨, 흐물흐물한 글씨, 몽당연필 같은 글씨 등이다. 홍길동이 쓰면 홍길동체가 되고, 춘향이가 쓰면 춘향이체가 된다. 전주완판본 방각본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글자체, 소위 민체들이 바로 특정 울타리를 벗어난 허튼체다. 창의와 멋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이다.
전주시가 지난 7월 ‘전주완판본’을 토대로 완성한 ‘전주완판본체’ 선포식을 가졌다. 이 서체는 (주)한글과컴퓨터의 ‘한컴오피스 NEO’ 프로그램 기본서체에 탑재됐고, 전주시는 물론 한글단체 등이 적극 보급하기로 했다. 허튼체는 계속되겠지만, 조선 후기 전주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양한 서체들을 정형화, 대중 보급에 나선 것은 뜻깊은 일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