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기간에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자주 갔던 강릉과 남이섬은 예전의 모습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바가지요금과 불친절만이 기억나던 강릉은 깨끗한 동해바다와 어울린 오죽헌, 경포대 그리고 카페거리로 단장하였다. 여유 있고, 조용히 머물면서 오랫동안 잔잔하게 기억나는 장소였다.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MT장소로 난장판이었던 남이섬의 변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배로 10분 남짓한 거리이지만, 다리로 연결하지 않고 배나 와이어로 도달하는 방법은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배는 북한강변의 정취를, 와이어는 액션과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남이섬을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독립시켜 비자를 발급하고, 섬 전체를 문화ㆍ예술ㆍ환경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타조 등 야생동물을 사람과 어울리게 하여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다양한 겨울연가 캐릭터를 격조있게 판매하였다. 인위적인 동물원과 특색 없는 싸구려 관광 상품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유럽 여행 중에 인상 깊었던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못지않았다. 강릉과 남이섬을 보면서 문득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였던 생각이 난다. 민족이나 관광지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특정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강원도 휴가여행은 내가 사는 전주를 관광지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주하면 비빔밥 정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가, 한옥마을이 전국적 관광지로 떠오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꼬치구이와 중국집 같은 정체불명의 음식점과 역사문화적 깊이가 없다는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지적이다. 관광지는 품격있는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 아니다. 중고생들의 수학여행과 노인들의 효도관광 등 다양하다. 이들에게 맞는 볼거리가 있고, 먹거리가 있으면 역사적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대중적인 관광지와 더불어 품격과 향기가 있는 관광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식점의 종류보다는 개수와 음식의 질을 유지하여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한옥마을이라고 하여 한정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1년에 천만이 한옥마을을 찾으면서 전주시는 전주역 마중 길을 조성하여 논란이 되었다. 교통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문화 우선의 도시를 고려하고, 전주역으로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전주의 인상을 좋게 하자는 것이 명분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도시의 외곽순환도로가 제대로 없는 전주에서 백제대로와 기린로는 전주를 관통하는 핵심도로이다. 교통이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마중 길에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문화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중 길 발상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전주의 핵심도로에 조성해야만 하는가. 제발 관광지 개발에 관이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이섬과 강릉은 디자이너와 커피 장인의 오랜 노력의 결과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돔 만드는 기술을 기다려 20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안목과 예산이 부족하면 개발하기 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후대를 기다렸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롯데 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정체불명의 흉물스러운 우주정거장 조형물을 철거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