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추구하는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돈이나 명예를 우선순위에 두는 이들이 참 많다. 사랑이 첫 번째 조건이라고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신간’ 편한 게 제일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언필칭 ‘무욕’과 ‘무소유’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행복 바이러스’에도 3단계 영향 규칙이 있다고 한다.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확률이 15% 올라간다는 것이다.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10%, 그 친구의 친구가 행복해도 6%다. 부모의 형제의 자제인 사촌이 논을 샀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 행복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배가 아픈 건 6%를 뺀 나머지 94% 때문일까.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순전히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행복은 상대적 개념인 것 같다. 너를 디뎌야 내가 올라설 수 있다고 가르쳐 온 우리의 경쟁교육 시스템이 어릴 적부터 그런 의식을 뿌리내리게 만들었을까. 요즘 세상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강조하는 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은 물론 아니다.
좀 손해 볼 줄 아는 사람, 지위는 높지 않아도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가운데 뿌듯한 보람을 찾을 줄 아는 사람, 더 가진 걸 내세우는 대신 자신보다 덜 가진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을 친구로 곁에 두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어느 카페 벽에 걸린 ‘행복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렴’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