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곡점에 설 때마다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진리와 끝도 없이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 부침을 거듭하는 인간사야말로 인생의 참된 깨우침을 얻는다. 계절의 줄다리기는 보고 듣고 피부에 닿는 것들로 느껴지지만 어쩌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불어가는 나이테만큼 때로는 추억이 파노라마로 밀려올 때면 현실은 비록 그러하더라도 기억 속 풍요로움이 이 또한 행복일 때가 많다. 파스텔톤 삽화로 그려지는 추억 속 편린들이 순환 고리를 덧칠할 적마다 철 따라 새로움으로 묻어나곤 하기 때문이다.
채송화처럼 작은 앉은뱅이 꽃도 저 높은 하늘빛을 옴쏙 안고 피어, 투명한 색채로 뜰 안에서 계절을 키운다. 햇볕의 파장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해바라기 꽃과 선홍빛 칸나의 자태로 눈이 시릴 만큼 맑은 여름을 수놓는다. 가냘픈 보랏빛 나팔꽃, 귀여운 초롱 모양 분꽃은 아기 입처럼 오물오물 소곤댄다.
이렇게 오롯한 꽃들의 여름 잔치가 가을을 부르는 삽상한 바람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이맘때면 어릴 적 어머니 옷깃에서 물씬 풍기던 메밀밭 풋풋한 냄새가 그립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신 아버지의 올곧음에 맞춰 농사일하시랴 또 자식들 건사까지 무던한 세월이었다. 지금 내 나이 어릴 적 엄마 자리에까지 왔다. 지금은 쉽게 사다만 먹는 메밀묵을 손수 맷돌에 갈아 찰지게도 쒀주셔서 양념장에 퐁당 적셔 먹던, 내 고향 집 넓은 마당 평상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가을 저녁은 넘을 수 없는 모성(母城)이다. 보고 싶은 어머니도 이제는 밤하늘별이 되어 반짝인다. 우리의 해후는 가을밤 쇼팽의 ‘야상곡’ 선율 따라 내 안의 가을 서곡 그리는 순례자가 되기도 한다. 어느 별 어느 자리에서 빛의 언어가 시(詩)가 되는….
찬바람이 꽃가지에 걸터앉으면 고추잠자리 맴도는 하늘 늙은 지붕 위 휘어진 나뭇가지 어디쯤인가 따살거리는 햇살이 분주한 여인의 손놀림 사이로 빠지고 가을이 여기저기서 달려오고 있다. 계절의 성산을 쌓기 위한 가을맞이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 또한 제 안의 결핍을 변형해야 하는 부단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파란 하늘 넓은 캔버스에 티 없는 소망 하나씩 흰 구름에 두둥실 띄워 봐도 좋겠다. 단단한 땅을 딛고 맘껏 뛰고 걸을 수 있는 땅에 지혜를 심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대지의 여신, 태초의 어머니 가이아가 전해지고 있듯 땅은 어머니의 상징이며 넓고 깊은 지혜의 샘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우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0세를 사는 자신의 일상에서 반올림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면 반내림을 하는 것이 기쁨이라면 하등의 조건에 뭐가 따르랴! 내 삶의 주관자는 자신이기에 자연의 섭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보람이고 행복일 것이다.
천(天), 지(地), (人)의 합이 선(善)을 행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이 세상 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을 문턱에서 내 행복은 내가 가꿔야 내 것인 것을…. 쉽고도 어려운 진리에 방점을 찍는다.
△이점이 시인은 〈시와 산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두리문학회, 샘동인 회원으로 현재 전주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문인화 작가, '화랑 묵객' 서예 초대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