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2월 24일 조선 총독부령 제7호가 공포되면서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립, 본격적인 한센인 병원이 운영되었다. 지금은 의료 기술발전과 생활환경 개선으로 환자들의 완치율이 높아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다. 일제 강점기 때는 한센인들을 강제로 구금시키거나 강제노역 그리고 강제로 단종수술을 실시하는 등 인권유린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살인 압박에 시달렸고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영원히 격리돼서 살아야만 했다.
감금실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가 출소할 때는 검사실로 끌려가 정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 단종수술은 1927년 3월 일본 생리학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 암흑 같은 시절에 소록도 국립병원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백의의 천사인 마리안과 마거릿은 당시 28세, 27세 나이로 갓 간호학교를 졸업, 한국 소록도에 파견할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응모했던 것. 이들은 오스트리아 가톨릭수녀회 소속으로 처음 소록도 땅을 밟았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사회가 편견을 갖고 배척한 환자들을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부위를 날마다 치료해 나갔다. 이들의 당돌한 행동을 말리기도 했으나 워낙 의지가 강해 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40년 간이나 청춘을 불사르며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는 데만 전념했다. 자신의 인생 전부를 이 곳에 바쳤다.
이제 4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70세의 할머니가 된 이들은 이 곳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편지 한장 달랑 남겨 놓고 홀연히 자신의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고향에서 소록도로 올 때만 해도 하얀 백조처럼 청아했지만 40년 간을 환자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덧 황혼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의 삶의 궤적은 자기 희생과 헌신 그 자체였다.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국경을 뛰어넘은 벽안의 사랑이 생명의 꽃으로 환하게 피어났다고 찬사와 격려가 이어졌다.
마리안과 마거릿 수녀는 모든 걸 남을 위해 내어주고 이제 할머니가 되어 빈손으로 고향을 찾았다. 인생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읊조렸지만 그들은 맘속의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선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들의 사랑에 감동, 헌신적인 봉사와 희생적인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여 그들의 고귀한 사랑을 그려줬다. 이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상영되자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또 오스트리아는 이들에게 정부 훈장을, 우리 정부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이번 추석 명절을 계기로 해서 두 수녀가 걸어온 따뜻한 인간적인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들 두 수녀들처럼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헌신적인 삶은 살지 못해도 최소한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 갔으면 한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은 자식 걱정 때문에 근심이 많다. 자식들 잘 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아끼지 않는 부모님의 맘을 헤아려 봤으면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고 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결국 두 수녀가 헌신적인 봉사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인생을 정리하듯 우리도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을 자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번 긴 추석연휴 기간 고향의 정취에 물씬 빠져 그간 지친 심신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작은 실천에서 출발한다. 노후에 부모님이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주 찾아보는 게 효의 작은 실천일 수 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준 사랑은 하해와 같아 그 무엇과 비할 수 없다. 무한정한 사랑을 받고 자라온 자식들이 긴 추석연휴 동안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겨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