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마을 7공주 할머니

 

산막마을을 찾은 것은 10년전 이다. 산막마을은 임실군 강진면 문방리, 섬진강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중턱에 놓여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산 모습이 붓자락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필봉’이 마을을 품어 안고, 오른쪽으로는 회문산의 자락이 이어진다. 마을이 번성했을 때는 30가구가 넘었다지만 10년 전만해도 9가구, 14명이 마을 주민의 전부였다. 마을에는 서로 벗 삼아 의지해 살아가는 일곱 명 할머니가 있었다. 열아홉, 스무 살에 시집와 50-60년 이 마을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대부분이 독신이었다.

 

‘산막마을 예쁜 할매’로 통하는 유시현할머니는 열아홉 살에 산막으로 시집을 왔다. 7남매를 둔 할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내보냈지만 강진 읍내에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며 살림을 꾸려주는 아들 덕분에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김순덕 할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부러움을 샀다. 셋째 아들 한식씨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인데, 늦장가를 간 아들은 산막마을의 보물이 된 딸 ‘수빈’이까지 선물로 안겼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인 전순녀 할머니는 열아홉 살에 산막마을로 시집왔는데 6.25때 빨치산을 따라나선 남편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다. 산속에 3년이나 숨어 살았던 남편은 전쟁이 끝나자 ‘상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20여년 연좌제로 엮여 자식들까지 고생을 했다. ‘자수하고 도장 찍고서야 괜찮아졌다’는 할머니는 ‘두 번 다시 그런 세월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인순 할머니는 ‘얼굴이 안이뻐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 순창 인계에서 스물세 살 노처녀로 고갯길을 가마타고 시집와 살았고, ‘고약한 시어머니’를 만나이 마을에서 제일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는 김점이 할머니는 시어머니 원망은 커녕, 마을길에 쓰러져 임종을 맞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해로하는 덕분에 다른 할머니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는다는 송영래 할머니, ‘할머니’ 칭호가 무색할 만큼 발랄(?)하고 젊은 조영자 할머니까지 일곱 명 할머니들을 우리는 ‘산막마을 7공주’라고 불렀다.

 

할머니들이 그날 단체복(?)으로 입고 있었던 청색 꽃무늬 ‘티샤쓰’가 눈에 선하다. 장에 갔다가 ‘좋아 봬서’ 2000원에 하나씩 산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들을 만난 것은 추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아들 딸 만날 생각에 가슴 설레시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루나 이틀 쉬면 갈걸 뭐. 그것으로라도 감지덕지 혀야지. 맘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혔는지 벨일 없이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죠. 우덜 자식들은 다 효자들이어요.”

 

이 세상 부모들에게 ‘내 자식’은 모두 효자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