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 소재호

퍼렇게 사무치다가

 

노랗게 부끄럽다가

 

홀로 몸 뒤틀며

 

고뇌까지 다 털고

 

혼곤히 철학을 한다

 

△무작정 걸어보고 싶은 가을이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머플러로 감싸주면 따뜻한 온기로 마음의 문이 열린다. 은행나무에 투사된 시인을 떠올려 본다. 가슴이 시퍼렇게 멍이들 정도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마냥 부럽다. 시간이 쌓여 노랗게 물든 추억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한 그 사랑이 단풍들었구나. 이젠 소멸의 아픔을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고통을 통하여 기쁨을 만날 수 있도록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에 내 몸무게를 올려 본다. 소멸의 철학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