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로 남을 것이냐, 내가 될 것이냐

공통된 영역을 찾고 상대 생각 들어보는 어른스러움이 필요

▲ 김신철 북스포즈 디렉터

수능을 마친 저녁 아버지는 말했다. “이제부터 성인인데 무엇을 하고 싶니?”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냐고 되물었다. 이번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서른” 지구가 멸망해도 내게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였다. 물론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함정이다.

 

내게는 지구 상의 그 어떤 문제보다도 대비를 못한 것이 서른 맞이다. 서점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답을 책에서 찾았다. 아거 작가의 ‘꼰대의 발견’이라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꼰대들을 분석한 꼰대의 발견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종이가 거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나 다 꼰대일 수 있다.

 

꼰대의 발견에서 등장하는 꼰대의 특징은 이렇다. 내가 누군지 아냐며 서열이나 신분을 따진다. 상대에게 충고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게 그 사람을 돕는 일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나 생각을 들어줄 여유는 없다.

 

꼰대는 곧 내 말이 옳다는 신념이 너무 커진 나머지 상대의 생각을 공감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다. 사실상 영화관에서 팝콘 하나, 혹은 서비스로 나오는 땅콩 하나에도 툭하고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안에 만연한 꼰대기질이다. 다만 비행기를 멈추거나 돌릴 재력이 없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스스로 성찰을 할 수 있는 이 책이 고마워서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과 지인들에게 <꼰대의 발견> 을 자주 추천한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버지만은 이 책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정말로 기다려줬다. 이웃집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했고, 사촌 친척이 국가고시에 합격했어도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답게 커가고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요새 관심 있는 일은 뭐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주다. 정확히 말하면 전주라는 도시의 리듬을 좋아한다. 출근길 지하철처럼 밀도 있는 서울의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에 전주에 남아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졸업 후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두 번째부터는 솔직한 욕심이다. 전주에서 전주다운 일로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첫 기고글부터 자기 자랑과 아빠자랑이라니! 전북일보가 가족신문이냐”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정말 전주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잘’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당장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고, 지역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전주가 자신만의 길을 잘 가는지 역시 중요하지 않겠는가?

 

지방에 있는 도시들은 ‘낙후’라는 낙인을 탈피하기 위해 좋은 것은 모두 따라 지었다. 이제는 어느 지역에 가도 번듯한 백화점이 있고, 영화관이 있다. 딱 하나, 청년세대의 집은 없다. 결국 청년들은 프랜차이즈 도시냐 본점이냐를 골라야 한다.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진 곳에 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전북일보에서는 ‘어떤 것이 전주의 발전이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독자 입장에서는 생각의 틀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소중한 기회가 내 주장만 외치고 마는 꼰대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공통된 영역을 찾고 상대의 생각도 들어보는 어른스러움이 더욱 필요할 때가 아닐까?

 

△노유리 씨가 ‘청춘예찬’ 필진에서 빠짐에 따라 김신철 디렉터가 필자로 참여합니다. 김 디렉터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옥상블루스> 등 단편영화를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