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리(別離) - 박경희

가을이 오고 단풍이 물들면

 

가슴 속 숨은 암반수 넘쳐흐른다

 

그대 떠난 날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부르튼 입속으로

 

슬픔을 꿀꺽 삼키던 통증,

 

달력 걸린 못에 고무줄 걸어 첫 표시하고

 

찰랑찰랑 저울 수 헤어보며

 

성냥개비 숫자로 표시한 후

 

긴 손톱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맘 놓고 마시던 때가 아련하다

 

할머님이 빚었던, 시큼 달큰한 우리쌀

 

우리밀의 농주 한 사발 마실 때면

 

울긋불긋 가을 산으로 물들었다

 

쌀쌀한 늦가을 해질녘에

 

두 눈 붉게 충혈되어, 그대 떠난

 

먼 산 바라보며

 

멍먹한 목구멍으로 들어붓는 술

 

부추전 손으로 집어서

 

우적우적 눈물 섞어 삼키고 있다

 

△농주 한 사발 마시면 상처만 남긴 옛사랑이 떠오른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부추전 손으로 집어서 또 한 잔 마셔볼까? 늦가을의 풍경은 화사한데 황금 옷을 벗어버린 은행나무 꼭대기 옥탑방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둥지를 떠난 사랑. 그 위태로웠던 사랑은 별리 이후에도 통증만 남는다. 새끼손가락으로 저어서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농주가 아른거린다.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