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숨둥?” 며칠 전 만주 일대를 작품 취재차 돌다 온 지인에게 연변 현지 가이드가 울분을 토하며 했다는 말이다. 올해 개봉해 수백 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 <청년경찰> 에는 연변 말을 쓰는 조폭들이 나온다. 납치, 인신매매, 살인을 일삼는 살벌하고 잔인한 캐릭터이다. 폭력 느와르 영화를 찍는 기법들이 날로 진화하면서 영화 속 인물들의 폭력성은 사실 그 이상의 실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연변으로 상징되는 조선족들의 인상은 그렇게 대중적으로 규정되고 중국동포들이 밀집해 사는 가리봉동은 범죄의 소굴처럼 여겨져 발길 닿기 껄끄러운 지역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중국동포들은 <청년경찰>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사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고 공대위를 꾸려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년경찰> 청년경찰> 범죄도시>
여수에서 상경한 폭력배들의 신산과 몰락을 그린 <신세계> (2013)에서 연변 폭력배들이 국내 조폭의 지시를 받는 무식한 폭력하청업자로 나오는 것에 비해 <범죄도시> 등에서는 국내 주먹들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신흥 악의 본산으로 나온다. 2004년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완전히 ‘비현실적’ 설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조폭들의 현황을 추적하는 기사에 따르면 조폭들의 계보에도 외국인 체류자들의 점유율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파악되는 조폭들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가 중국 동포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범죄도시> 신세계>
중국과 수교가 막 이루어진 20여 년 전만 해도 연변은 가볼 수 없는 북한을 대체하여 조선의 옛 풍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순박한 고장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교류가 빈번해진 후, 연변은 어문과 문화의 기준처럼 여겨지던 북조선을 벗어나 급속히 한국행 러시에 휘말렸고 조선족은 국내 노동시장의 하층에 편입되어 서울 주변 곳곳에 집단거주지역이 생겨났다. 연변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과 정반대로 한국으로 유입되는 조선족들이 급증하면서 연변 내부는 밖으로 떠난 사람들로 공동화되었다. 중국 자체에서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농촌사회가 해체되면서 북경 상해 등 큰 도시는 농민공과 주변부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변방의 주민들로 넘쳐났다. 연변 조선족은 그중에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명민함으로 여러 곳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예전 깡패영화에는 주로 전라도 사투리가 나왔다. 여수, 목포라는 지명은 깡패들이 맨몸으로 치고 올라오는 고향의 대명사처럼 쓰였고 광주 출신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돈이 넘쳐나는 신흥개발의 틈새에서 유흥지구의 패권을 놓고 칼질을 교환하며 깡패들의 전설 시대를 열었다. 조성식 기자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에는 꽤나 흥미롭게 활극들이 나오지만 다 ‘먹잘 것’을 찾아 떠도는 부랑의 신세였다. 모든 폭력영화가 그렇듯 주먹은 결코 권력을 이길 수 없다. 수갑을 채울 권력 앞에, 총칼 앞에 ‘사내다움’과 완력은 너무도 무력하다. 대한민국>
영화는 북쪽 말과 연변의 억양을 실어 낯선 것에 대한 공포를 효과적으로 쓸 뿐, 연변 사람들의 내면과 인생 유전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철저한 타자의 시선, 구역과 구역을 나누어 개별의 울타리에 삶을 가두는 앵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육중한 문과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거주지의 경계들이 그렇고, 대규모 사육시설과 방역 체계들을 유지하고도 수 틀리면 내려지는 ‘살처분’들이 그렇다. 언젠가는 살을 맞대고 네 삶 내 삶 섞여 살아가야 할 ‘모국어의 한 자식들’을 대하는 이런 가벼움이 어느날 깊숙한 곳 우리의 허방을 찌르는 진짜 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