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정책, 육성 아닌 패러다임 전환을 지향해야

일자리 분야의 육성 정책은 또 하나의 시장 만드는 것 / 사회적 경제 관점서 접근을

▲ 김정원 다른미래협동조합 이사·전북대 강사

‘결정적 국면’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예상치 못한 외적 사건 혹은 우연적인 변화의 시기를 지칭한다. 결정적 국면은 우연하게 발생하지만 이 때 만들어진 게임의 규칙은 이후를 지속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결정적 국면은 제도의 형성이나 사회 변동에 대한 설명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만약 한국의 사회적경제 역사에서 결정적 국면을 말해야 한다면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시절이 해당한다. 그것은 이 시기 들어서 사회적경제가 담론과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며, 이 때 이후 몇 년 간 형성된 작동 방식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시 ‘실업’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였고 그래서 ‘일자리 창출’은 전 사회적 과제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적 재원을 투입한 ‘한시적인 일자리 창출 사업’을 운영한다. 이 때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안한 것이 기왕에 공적 재원을 투입한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여야 하고 시민사회 조직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사회적경제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 속에서 담론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아이디어를 정부 정책으로 다시 가공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경로가 만들어지고 사회적경제의 조직화는 이 경로에 대한 의존에서 재생산된다. 이를 ‘경로의존성’이라고 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고 제도를 만들고 재정을 투입한다. 시민사회 조직들은 이에 호응해서 사업단을 만들고 창업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업들은 사회적경제기업이라 규정된다.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각종 협동조합들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적경제는 또 다른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호명되곤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0월에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회적경제를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일자리정책 5개년 로드맵’에 의하면, 사회적경제는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보고이기 때문에 집중 육성할 계획이란다. 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사회적경제 현장 일각에서는 큰 기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아마 정부가 제시한 로드맵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사회적경제는 시장의 측면에서 크게 확장될 것이고, 그 자체로도 우리 사회의 긍정적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정부의 접근이 아쉽다. 사회적경제를 성장의 측면에서 접근하며,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고 육성을 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접근에는 사회적경제가 지니는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연대와 협동의 가치, 일전의 칼럼(8월 21일자)에서 이야기한 환대의 경제가 어떻게 마련되고 작동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그 이전 정부들과 별 차별성이 없으며, 결국 고착된 한국의 사회적경제 재생산 경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시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특정한 기업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세계의 문제이며 시장에 의해 식민화된 우리의 일상을 이윤이 아닌 호혜적인 관계를 실현하는 경제 활동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니 사회적경제를 제대로 구현하고 싶으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육성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경제 관점의 정책 패러다임 구성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빠진 채 특정한 분야를 육성하는 정책으로 접근하는 경로는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드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