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전북도립미술관이 제4대 관장을 맞았다. 현장 경험은 물론 미술관 정책·행정 등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김은영 관장이다. 부임하자마자 계획돼 있던 미술관 대형 전시 개막과 소장품 구입 등 업무를 정신없이 보는 와중에도 전북 미술 현장을 다니며 지역과 전북도립미술관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그의 주요 비전인 ‘미술관 명소화’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김 관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소회와 미술관 주요 운영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하신 지 만 3개월이 지났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바쁘게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석 달 동안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지역 문화의 일원이 돼 전북도립미술관을 둘러싼 현장과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미술관의 개념과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데, 이는 지역민들의 요구와 사회적인 효용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확정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 지역 공립미술관과 함께 일반화하기보다는 지역 미술인과 도민들이 원하는 의견들을 많이 듣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미술관을 가꿔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도 매우 달라졌습니다.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미술관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미술관은 개개인의 정신을 고양하고 미술을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미술인만을 위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민과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현재의 전북도립미술관은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건립된 13년 전과 달리 오늘날은 지역에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요즘 취향에 맞춘 공간들이 잇따라 나타난 상황에서 전북도립미술관이 유일한 공립 미술관으로서 조건없는 관심과 충성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죠. 따라서 지역민 누구나 미술관을 쉽게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명소화’하는 것이 저의 주요 비전입니다. 현재의 문화소비시대에 맞춰 도민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 ‘미술관 명소화’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총 네 가지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미술관의 기존 건축물을 재단장하고 건물을 예술 활동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건물은 방문객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외관으로, 첫 이미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현재 미술관 건물은 세 개의 넓은 면이 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활용해 예술 영상을 상영하는 ‘뮤지엄 파사드’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야외 정원과 미술관 앞 놀이터·공터를 시대적인 미감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입니다. 옥외 문화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변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계획입니다. 경관 조경까지 더하면 미술관의 경관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모악산 숲에 가려져 있는 미술관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죠. 마지막으로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던 당시 국내 최초로 진행했던 ‘아트팹랩’을 전북에 맞게 도입하고자 합니다. 아트팸랩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최신 디지털 장비 산업과 예술을 융합한 일종의 미술 창작·교육·소통 공간입니다. 미술관을 오지 않는 계층도 유입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작·유통까지 아우르는 21세기형 미술관 모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임기 내 중기 사업으로 내년에는 예산 확보를 위한 기본 구상 용역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 미술관 소장품 활용의 중요성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장품은 미술관 프로그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미술관은 작품 수집을 기반으로 외연을 확장해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펙티브 콜렉션(effective collection) 정책’ 즉, 소장품을 보존·연구하면서 파생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권의 미술관은 건물·전시관 위주로 운영이 이뤄져 왔습니다. 소장품 구매도 부족하고 이를 활용한 콘텐츠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죠. 콘텐츠가 빈곤한 미술관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게 되죠. 전북도립미술관 역시 현재 가진 소장품 1600여 점도 기본적인 정보만 기록돼 있을 뿐 충분한 도큐멘테이션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소장품 구입 예산이 제일 작은 것도 어려움을 증가시키는 요인입니다.”
- 전북도립미술관만 실정에 맞는 소장품 활용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요.
“현재 보유한 소장품을 살펴보면 전북지역 원로·작고 작가들의 작품을 꽤 많이 수집했습니다. 이를 꿰어내 전북도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소장품에 깃든 전북 작가들의 문화·특성을 뽑아낸 전북 미술사 연구·특징 정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 미술인들이 그렸던 양식, 소재, 이야기성을 충분히 발굴해 하나의 특징으로 만들어내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발굴하는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프로그램 면에서도 소장품을 활용한 교육, 전시, 출판, 직접 대여 등 사회적인 효용성을 만들어내도록 할겁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소장품 기본 기록은 물론 소장품으로 진행했던 교육·전시·출판 자료 등 종합적인 정보 관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 전북도립미술관 안에 들어와 살펴보니 운영의 어려움이나 보완해야 할 점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미술계 생태계 전반적으로 비평·연구 등 이론을 하는 사람이 매우 부족합니다. 지역 미술인들이 가장 크게 요구하는 미술사 연구도 사실상 현재 미술관 학예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실정이고, 외부의 전북미술사 전문가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빠른 시대변화 속에서 13년째 변하지 않는 예산도 보완돼야 합니다. 시각 예술은 현대 문화의 본질적 요소이자 사회 발전의 큰 동력입니다. 한데 미술관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니 도 문화체육관광국 예산 안에서 시각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습니다. 현재의 예산은 아주 기본적인 전시, 소장품 구입, 부대행사를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13년간 운영은 이어져 왔기 때문에 형식적인 요구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정말 심각하게 미술계 현황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역 안팎으로 변화의 요구는 큰데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 될 때 변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국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고 저 자신도 제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비전들이 전북지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용기를 내서 꾸준히 추진하겠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도민들의 문화 향유와 여가, 휴식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은영 관장은
- 미술정책·행정·기획 아우르는 전문가
김은영(56) 전북도립미술관장은 서울대 서양학과 학사 및 서울대 대학원 석사를 거쳐 미국 존에프케네디대학원에서 미술관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대 문화관광정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업무적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교육정보서비스팀장(서울관), 경기도립미술관 학예팀장, 한미사진 미술관 기획실장, 홍익대 미술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큐레이터협회 정책이사 및 부설연구소 부소장 등을 지냈다.
재직 이력과 미술·미술관·문화관광을 아우르는 전공 배경에서 볼 때 그는 미술계 전반의 경험이 풍부한 최적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난 20년간 미술관의 전 분야, 소장품과 전시·행정·아카이브·교육·마케팅 등에서 실무와 연구를 수행했고, 특히 미술관의 중심 기능인 소장품 관리와 정보화 분야에서 일찍이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금 5억 원을 유치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무한상상실 아트팹랩’을 개소해 국내외적으로 선두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김 관장이 미국 달라스미술관으로부터 유치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맞게 개발한 ‘MMCA프렌즈’ 프로그램이 1만 5000여 명의 회원 가입을 달성, 대표 교육문화마케팅 모델로 만들기도 했다.
또 미술관 내의 다양한 직무 분야를 두루 경험·이해하고 각각 전공이 다른 직원들과 행정공무원, 학예전문직의 능력과 창의적인 협력을 조율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