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두 번째 짝 - 이경옥

엄마, 이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거야?”

 

새벽부터 이삿짐센터에서 온 아저씨들이 짐을 싸고 있어요. 나희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나희 엄마와 아빠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해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지금 사는 집보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어떤 집인지 궁금했거든요.

 

쨍그랑!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이삿짐을 나르던 아저씨가 나와 내 짝인 항아리를 떨어뜨린 거예요.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나희 엄마가 조금 남은 고추장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씻어놨거든요. 내 짝인 항아리는 산산조각 나 버렸어요.

 

“어머, 어떡해!”

 

우리를 보고 달려온 나희 엄마가 깨진 항아리 조각 앞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죄송합니다. 옮기다가 그만 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숙였어요.

 

“친정 엄마가 준 항아리인데…….”

 

나희 엄마는 한숨을 길게 쉬었어요.

 

“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희 아빠 말에도 나희 엄마는 깨진 항아리를 밀치고 나를 집어 햇빛에 비춰봤어요.

 

“이것도 금이 갔네.”

 

나희 엄마가 나를 살피는 동안에도 나는 온 몸이 욱신거렸어요.

 

“아파트에 놓을 자리도 없던데 항아리 정리 좀 해. 금이 간 건 쓸모없으니 버리고.”

 

나를 버리라는 나희 아빠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한참 망설이던 나희 엄마가 깨진 항아리를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어요. 나희 아빠 말대로 이대로 버려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어요. 난 누군가를 덮어야 하는데 금이 가서 쓸모가 없어졌으니까요. 나희 엄마는 다시 한 번 나를 들어보더니 깨진 항아리 조각 위에 얹어놨어요. 나는 다른 항아리 친구들과 인사도 못한 채 대문 밖으로 나왔어요.

 

“나희 엄마, 이사 가우?”

 

“네. 할머니 건강하게 계세요.”

 

길 건너 언덕 위에 혼자 사시는 유모차 할머니예요. 항상 유모차를 끌며 폐지를 주우러 다녀요. 나희 엄마가 신문지를 몇 번 준 적이 있어서 나도 알아요. 할머니는 깨진 항아리 조각과 나를 빤히 쳐다봤어요.

 

“근디 뭘 그렇게 내 놓은 거여?”

 

“항아리가 깨져서 버리려고요.”

 

“뚜껑은 쓸 만 헌 거 같은디?”

 

“살짝 금이 갔어요. 제 짝도 없어서 마땅히 쓸데도 없고요.”

 

나희 엄마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대답했어요.

 

“뚜껑은 내가 가져가도 될랑가?”

 

“금이 가서 못 쓸 텐데....... 필요하시면 가져가셔요.”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유모차에는 재활용 병과 신문지가 고무 밴드로 단단히 묶여 있었어요. 할머니가 나를 번쩍 들어 단단하게 여며주었어요.

 

“세상에 쓸모없는 게 어디 있당가. 짝이 없어도 서로 어울리는 것이 따로 있것제.”

 

할머니가 유모차를 힘껏 밀면서 중얼거렸어요.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마당에는 재활용 물건들이 많았어요. 신문지, 박스, 온갖 병들이 차곡차곡 한 쪽에 쌓여 있었거든요. 마당 한쪽 감나무 옆에는 작은 항아리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장독대로 가더니 엎어놓고 물을 부었어요. 그러자 내 몸에서 물이 방울방울 빠져나갔어요. 난 불안해졌어요. 할머니 집에서도 버려질까봐서요.

 

“뚜껑으로는 못 쓰것구먼. 그랴도 따로 쓸데가 있것제.”

 

후, 다행이에요. 할머니는 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항아리만 덮다가 배를 드러내고 있으니 조금 허전했어요.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햇빛도 한꺼번에 쏟아져 눈이 부셨어요.

 

다음 날, 현관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왔어요.

 

“다녀오마.”

 

대문을 밀고 나가는 할머니가 마당에 대고 인사를 했어요. 마치 나에게 인사 하는 것 같았어요.

 

“할머니, 집 걱정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는 할머니 등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어요.

 

할머니는 매일 아침이 되면 빈 유모차를 끌고 나가 저녁이 되어서야 신문지와 박스를 가득 싣고 돌아왔어요. 그러고 늦은 저녁에 혼자서 밥을 먹었고요. 그러다 가끔씩 장독대로 다가와 길게 한숨을 쉬었어요.

 

할머니가 신문과 병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어요. 전화벨이 울렸어요.

 

“힘들쟈? 그려도 힘을 내그라. 무슨 방도가 있것제.”

 

할머니가 아들과 통화를 하는 소리에요. 할머니 아들이 사업에 실패해서 찾아오지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전화를 끊은 할머니의 주름살은 더 깊어보였어요.

 

“내 자슥도 가슴에 금이 나서 저렇게 마음을 못 잡는구먼.”

 

할머니가 나를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그걸 보니 내 가슴도 먹먹해졌어요.

 

“아이구!”

 

이튿날 할머니가 현관문을 나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누구 없어요? 할머니가 다쳤어요!”

 

나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동안 앉아 있던 할머니가 벽을 짚고 한 발짝씩 걸어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걱정이 되었어요. 저러다 못 일어나실까 봐요.

 

오후가 되자 할머니는 절뚝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평상시보다 더 늦게 돌아왔어요.

 

“하나, 둘, 셋.......이렇게라도 도움이 될랑가 모르것구먼.”

 

빈 유모차를 끌고 온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고 있었어요. 아들에게 보내려나 봐요. 돈을 세는 할머니 얼굴이 환했거든요.

 

감나무 잎이 주홍빛으로 물들었어요. 바람까지 몹시 심하게 불던 날, 금이 간 내 몸 위로 비가 쏟아졌어요. 그런데 빗물이 톡톡 떨어진 곳에 어디선가 작은 씨앗이 날아왔어요.

 

“아이, 추워!”

 

아직 빗물이 남아 있어서인지 오들오들 떨었어요. 나는 씨앗을 꼭 끌어안았어요. 씨앗도 나에게 살짝 기대었고요. 나는 갈라진 틈으로 씨앗이 빠져나갈까 봐 몸을 바짝 움츠렸어요. 그 모습을 봤는지 감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씨앗을 덮어주었어요. 감잎 덕분에 씨앗은 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 모래가 날아들었어요. 내 몸은 점점 무거워졌지만 씨앗의 숨소리는 점점 편안해졌어요.

 

“쉴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씨앗은 나에게 소곤거리더니 잠이 들었어요. 나는 찬바람을 막아주려고 온 몸에 힘을 주었어요.

 

“어, 그랴. 괜찮다. 걱정허지 말그라.”

 

할머니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어요. 또 할머니 아들한테 전화가 온 거 같아요. 할머니는 바보예요. 아픈 데도 괜찮다고 말해요. 넘어진 뒤로 할머니는 절뚝거리며 걷는 데도요.

 

갑자기 찬바람이 씽 불어왔어요. 감잎이 덮어주긴 했어도 점점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덜덜 떨려 왔어요. 오늘은 하늘에 구름까지 가득했어요. 삐그덕,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나왔어요.

 

“눈이 오려나. 에구, 무릎이 또 말썽이구먼.”

 

바람 부는 하늘을 쳐다보던 할머니가 몸서리를 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할머니는 밖에 잘 나오지 않아요. 예전처럼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볼 수가 없어요.

 

다음 날 온 세상에 하얀 눈이 왔어요. 감잎으로 뒤덮인 내 몸에도 하얀 눈이 쌓였어요. 감나무에는 빨간 홍시 한 개만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고요.

 

“할머니, 눈이 왔어요. 나와 보세요.”

 

소리쳐 불렀지만 방에서는 할머니 기침 소리만 들려왔어요. 겨울이 깊어갈수록 할머니는 나오지 않고 마당에는 차가운 바람만 머물다 갔어요.

▲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내 몸이 자꾸만 간질거렸어요. 내 몸 구석에서 뭔가 꿈틀거렸거든요.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어요. "아, 따뜻해!" 난 깜짝 놀랐어요. 연두 빛 새싹이 내 몸에서 쑥 나왔거든요. /그림=권휘원

그러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내 몸이 자꾸만 간질거렸어요. 내 몸 구석에서 뭔가 꿈틀거렸거든요.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어요.

 

“아, 따뜻해!”

 

난 깜짝 놀랐어요. 연두 빛 새싹이 내 몸에서 쑥 나왔거든요.

 

“넌 누구야?”

 

“민들레에요.”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뚜껑님이 절 안아주었잖아요. 감잎은 이불이 되었고요, 모래는 나를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여며주었어요. 뚜껑님 몸에 금이 가 있어서 내가 살 수 있었어요. 물이 잘 빠져서 썩지 않았거든요.”

 

나는 어리둥절했어요. 새싹이 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오후가 되자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어요. 겨우내 할머니 얼굴이 핼쑥해졌어요.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장독대로 빠르게 왔어요. 그러면서 함박 웃었어요. 얼마 만에 보는 웃음인지 모르겠어요.

 

“겨우내 씨앗을 품느라 애썼구먼. 그려, 혀야 헐 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제. 항아리는 깨졌어도 두 번째 짝은 꽃이구먼. 우리 준석이도 너처럼 다른 일을 찾것제.”

 

할머니는 몇 번이고 나를 쓰다듬었어요.

 

“노랑꽃이 이쁘구먼.”

 

할머니가 내 옆에서 오랫동안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