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을 거친 작품들 중에서 1차적으로 고른 작품은 ‘소리샘’, ‘슬픈 바람개비’, ‘그해 봄’, ‘복숭아화채’, ‘혼서지’, ‘한선, 가을 매미’,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왜 의자는 파란색이었을까’,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등 11편이었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끈 건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네 편이었다. ‘바람의 언덕’에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겪게 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의 온기와 웃음꽃’을 발견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잘 녹아 있었다. ‘그 골목의 필경사들’은 오래된 골목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겨운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두 작품 모두 이웃을 대하는 성찰력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지만, 이야기 구성이 다소 산만해서 수필다운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머지 두 작품은 우선 글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가면’에서는 젊어서 주물 일을 하셨다가 노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복잡하고 애틋한 심경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린 수작이었다. ‘마키코 언니’는 일본인 사촌올케와 ‘나’(를 포함한 가족)의 오랜 인연을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인간적 화해의 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수필적 감동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둘을 놓고 오래 고심했다. ‘아버지의 가면’은 장면 묘사가 생동감이 넘쳤지만 문체가 다소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키코 언니’는 서사수필다운 박진감은 다소 부족했지만 안정된 문체로 잘 다듬어져서 수필적 완성도가 높았다. 결국 거듭된 퇴고로 작은 흠결까지 걸러내어 정성스럽게 구워낸 ‘청자연적’ 쪽으로 손이 갔다. 당선작으로 함께 올릴 수 없는 여건 탓에 마지막 손길을 아쉽게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가면’의 필자에게는 각별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