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무사히 살아갈 비결

아무리 좋은 말씀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허공에 뜬 말에 불과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 우리는 다사다난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일을 겪고 새날을 맞았다. 권세와 명예, 재력과 건강의 무상함을 극명하게 바라보며 보낸 세월이었다.

 

새해가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법문이 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대종사가 세배를 받고 답례로 준 ‘난세를 무사히 살아갈 비결’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부드러운 것이 제일 귀하고(處世柔爲貴), 단단하고 굳셈은 재앙의 근본이니라(剛强是禍基). 말할 때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發言常欲訥),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臨事當如痴).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急地尙思緩),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아라(安時不忘危).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一生從此計),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眞個好男兒).”라는 선현(先賢)의 시(詩) 끝에 “이대로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라고 첨언해 주셨다.

 

이 시는 월파 유팽로(月波 柳彭老 1554∼1592)의 한시로 추정된다.

 

유팽로 선생이 성균관에 재직하던 중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서울을 떠나 고향인 옥과현으로 돌아가던 4월 20일 순창의 대동산 앞들에서 500여 명의 군사들을 규합하여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의 기치를 올렸던 분이다. 그 후 유팽로 선생은 전라도 연합의병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고경명 장군을 치려는 적장의 칼을 대신 받음으로써 39세로 순절하셨다.

 

그런데, 정말 명쾌하지 않은가! 반어법으로 세상을 살아갈 비결을 밝힌 내용이 400여년을 지난 오늘에도 한 치의 어김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강하고 굳세기를 원한다. 강하고 잘나야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연약한 물이 바위를 뚫고, 봄바람이 동장군 보다 더 힘이 세며, 부드러운 혀가 이빨보다 오래 남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오래 남아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달변이나 웅변보다도 더듬거리면서 하는 진정어린 말이 사람을 쉽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말을 삼가고 행동을 삼가면 인간관계의 성공이 그 가운데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돌아가는 길이 되려 지름길이 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은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가 음과 양이 서로 관계하는 이치를 따라 존재하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는 선과 악의 인과보응으로 존재하게 되고, 천지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간은 생로병사로 변화하면서 끝없이 돌고 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곳에 있으면 모든 것을 놓고 안일에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사람이다. 험준한 산길에서는 오히려 잘 넘어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넘어지기 쉬우며, 역경을 딛고 성공하기는 쉬우나 순경에 방심하지 않기는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 안시불망위(安時不忘危) -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허공에 뜬 말씀에 불과하니, 무술년 새아침에는 이 비결을 마음에 새겨 난세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황인철 교무는 원불교신문사 사장과 원음방송 사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