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버킷 리스트'

새해 결심으로 단연 으뜸이었던 게‘금연’이던 시절이 있었다. 흡연의 폐해를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한 애연가들이 새해를 계기로 금연 결심을 하면서다. 연초 대부분 신문들도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성공적인 금연을 위한 조언들을 쏟아냈다. 시간이 지나면 친절하게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대개는 새해 감소했던 흡연율이 얼마 만에 다시 증가했다는 식이다. 새해 결심이‘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화살을 날린 것도 금연 문제였다.

흡연율이 근래 몇 년 사이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2016년말 기준 19세 이상 한국 남성의 39.1%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올해도 흡연자들의 상당수가 금연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금연을 두고 작심삼일을 탓하지 않는다. 굳이 언론이 나서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흡연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금연 프로그램이 상시 가동되기 때문이다.

새해에 소망하는 게 어디 금연뿐이겠는가. 새해 첫 날을 맞아 해돋이 명소마다 인파가 넘쳤다. 강추위를 뚫고 이른 새벽 해맞이에 나선 것은 단지 붉게 타오르는 장관을 보기 위함이 아닐 터다. 새해 첫 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 해 결심을 다지고, 소망을 이루겠다는 각오의 자리였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버킷 리스트’(bucket list)가 유행하고 있다.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다. 교수형을 집행할 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뒤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다음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목을 맸는데, 죽음을 뜻하는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2007년 영화‘버킷 리스트’로 대중적인 용어가 됐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영화 속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면서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책, 여행지, 취미 등을 소개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와 달리‘죽기 전’을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으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이십대·삼심대 등에 꼭 해야 할 몇 가지 등등의 자기계발서 역시 버킷 리스트의 확장판이다.

버킷 리스트는 금연과 같이 일회성, 단발성의 결심이 갖는 작심삼일의 허망함을 피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도 있고, 나를 중장기적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리스트 모두를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목표로 삼은 몇 개라도 이룬다면 어디인가. 그런 결심만으로 새해 버킷 리스트의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