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령, 대야성의 현재 병력은?”
청에 둘이 남았을 때 의자왕이 불쑥 물었다.
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은 신하들의 보고를 받은 후에 윤충만을 따로 남도록 한것이다.
윤충이 상반신을 조금 숙이고는 옥좌에 앉은 의자왕을 보았다.
“김품석이 군사 5백여명을 더 충원 받았습니다. 대야성의 병력은 7천이 조금 넘습니다.”
“김춘추가 대권을 쥐려고 제 사위놈에 병력을 증강시켜 주는 거야.”
“소신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김춘추만 무력화(無力化) 시키면 신라는 무너지게 돼.”
의자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태자 때부터 아버지 무왕(武王)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기 때문에 칭송을 받았던 의자다.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의자는 무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후에 신라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즉위 2년인 작년에 의자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신라를 공격해서 40여개의 성을 공취했지만 아직도 양에 차지 않는다.
신라에게 기습적으로 빼앗긴 한성유역의 영토까지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때 윤충이 말했다.
“대왕, 신라왕 선덕이 또 당에 청병(請兵) 요청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외우내환(外憂內患)이군.”
밖에서는 고구려와 연합한 백제군의 공격을 받고 안에서는 상대등 비담 등이 여왕의 통치에 반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세작이 많으니 장수들을 은밀하게 준비 시키도록.”
“예, 대왕.”
“칠봉성(七峯城)의 계백은 부임했나?”
“예, 대왕.”
“그곳에서 대야성까지는 몇 리나 되나?”
“3백리 가깝게 됩니다, 대왕.”
“계백은 대륙에서 기마군을 이끌고 하루에 5백리를 왕래한 장수야.”
“대륙은 땅이 넓고 평탄하지만 이곳은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합니다, 대왕.”
“그래도 계백은 하루 300리 거리는 주파할 것이다.”
의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윤충을 보았다.
그렇다. 담로 연남군 기마대장이었던 계백을 본국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의자와 윤충은 본국은 물론 대륙의 담로에서도 무장(武將)을 선발하여 은밀히 배치시킨 것이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방령, 그대가 계백을 불러 영(令)을 내리게.”
“예, 대왕.”
허리를 굽혀보인 윤충이 청을 나왔다.
내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좌(方佐) 연신이 윤충을 보더니 다가와 물었다.
“방령, 신시(오후 4시)가 다 되었으니 방성(方城)으로 가기엔 늦지 않았습니까?”
“밤에라도 닿아야지.”
병사한테서 말 고삐를 받아쥔 윤충이 말에 오르면서 말했다.
“나선군의 칠봉성주 계백에게 전령을 보내게.”
“칠봉성주 계백에게 말씀이오?”
“그러네. 기마군 일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바로 나한테 오라고 하게.”
연신의 시선을 받은 윤충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 장비 때문이라고 하게.”
“계백 가문이 기마군을 오래 했지요.”
방좌 연신이 전령을 소리쳐 부르더니 지시했다.
말을 걸리면서 윤충이 눈앞에 대야성을 떠올렸다. 거성(巨城)이다.
신라의 남쪽 국경 부근에 위치한 대야성 성주는 김품석, 김춘추의 사위이며 오른팔이나 같다.
대왕 의자는 대야성 공취를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