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국장은 전주시에서 여성공무원 영역을 확장해온 개척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7년 남원 대산면사무소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양 구청이 신설되는 등 행정조직 개편이 있던 1988년 전주시로 옮겨와 8년 여 동안 효자동의 발전을 지켜봤다. 강한 추진력과 책임감, 소통능력을 인정받아 여성으로는 처음 자치행정과장에 발탁됐고, 2014년 김승수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첫 여성 국장이 됐다. 그는 “ ‘첫 여성’이라는 의미부여가 부담스러웠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사명감으로 더욱 분발했다”고 돌아봤다.
박 국장이 잇따라 인사에서 주목받은 것은 눈에 띄는 업무성과 때문이었다. 5년 여 동안 교육지원계장을 맡아 전주시가 평생교육도시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교육지원조례를 제정하고 평생교육원을 만들었으며, 연수프로그램도 기획하는 등 현재까지 운용되고 있는 평생교육의 틀을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선미촌 재생사업도 박 국장이 주춧돌을 놓았다. 2016년 사회적경제지원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선미촌 재생사업에 착수했다. 한터전국연합회가 알몸시위를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성인권단체와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선미촌 재생을 위한 거점을 마련했고, 사업 추진에 동력이 될 국비도 확보했다. 권삼득로에 조성되는 ‘여행길(여성들이 행복한 길)’은 그가 지은 이름이다.
자치행정과장때 추진됐던 전주완주 통합 무산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 국장은 “전주와 여건이 유사했던 지역이 인근 지자체와 통합으로 눈에 띄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통합이 반드시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직 초창기에 대민 부서에서 일을 배웠던 그는 소통과 협상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잘못이 있을 때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진실한 자세가 상대에게 전달돼 어려운 일도 쉽게 풀 수 있었다고 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현장을 찾는 것도 공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덕진구청장 재직시에는 ‘현장 구청장’으로 유명했다.
박 국장은 지난 5일 공직 마무리 자리인 덕진구청장을 떠나며, 전주시청 전 직원에게 메일로 미리 퇴임인사를 전했다. “공직을 천직으로 여겼다”면서 “직장맘으로 걸림돌이 많았지만 동료와 후배의 격려와 응원 덕에 유리천장을 깰 수 있었다”면서 고맙다고 했다.
박 국장은 6개월의 공로연수동안 조직을 떠나 혼자가 되는 준비를 하고, 이후에는 40여년 동안 미뤄놓은 배움과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