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중화제국의 부활

▲ 한범수 전주MBC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이후 사드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방중 기간 국민들의 마음은 결코 개운하지 않았다. 의전 논란, 청와대 기자단 폭행 등에서 나타난 중국의 무례하고 고압적인 태도 때문이다. 더욱이 이는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앞으로 주변국들에게 어떤 자세를 보일 지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더한다.

 

2020년대 중반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넘어선다. 물론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패권 이동이 순식간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내부에 누적된 모순이 많고, 군사력과 교육 수준, 시민 의식 등의 측면에서 미국과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는 어마어마한 경제 규모에서 비롯되는 국력을 과신한다. 중국이 결국 21세기를 주도하는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며 찬란했던 한·당 제국의 부활을 확신한다.

 

그들의 자신감은 국제 관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개혁개방 이후 추진해오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노선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사전적인 의미대로, 그동안 중국은 외교 정책의 모든 초점을 경제 성장에만 맞춰왔고, 국제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의사 표명은 최대한 자제해왔다. 하지만 G2의 반열에 오른 지금, 중국은 자국의 핵심적인 이익과 연관된 문제에는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개입한다. 자국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무역을 무기로 주변국을 위협하며, 우월한 군사력으로 역내 긴장을 고조시킨다.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 한반도 사드 배치 등에서 중국 정부가 상식 밖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와 연관된다. 심지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정치적인 지위를 남용해 북한의 불법 행위를 비호하기까지 한다. 중국 정부가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를 지향할수록 내부에선 주변국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현실주의자들이 득세한다.

 

오늘날 중국은 국제 공산화를 꿈꾸던 반세기 전 중국이 아니다. 국가자본주의와 전통 유교 사상이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지금,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같은 혁명가가 아닌 전통 사회의 황제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백성’들이 ‘천자’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실히 생업에 종사하기를 바랄 뿐, 정치적인 사유는 허락하지 않는다. 주변국들 역시 중화민족의 우월함을 우러러봐야 할 조공국으로 대접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중국 지도부의 현실주의 외교 노선과 맞물려 천자국인 중국과 조공국인 한국, 베트남, 필리핀 등의 불균형한 관계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이념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중국의 주변국 길들이기 외교는 일회적으로 끝날 리 없다. 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양국 관계가 경제적으로 촘촘히 얽힐수록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는 중국의 압력을 이겨낼 힘이 필요하다. 미국, 일본 등과 전략적인 공조를 강화해 중국의 급격한 부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고, 중국발 천민자본주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강하게 붙들어야 한다. 동남아와 인도 등으로 수출 길을 넓혀 무역을 무기로 주변국에 공세를 가하는 중국의 전략에 대응할 필요도 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이 내세우는 실리외교는 우리만의 세밀한 전략과 철학이 뒷받침돼야 그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