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전주시 덕진구 아중저수지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여고생 홍모 양(19)이 숨진 채 발견됐다. 홍 양은 해지 방어 부서에서 고객들의 욕설을 받고, 실적을 채우지 못해 압박을 느꼈다. 홍 양의 죽음을 통해 ‘갑을관계·감정노동·특성화고 현장실습…’이라는 오랜 적폐가 세상에 떠올랐다. 1년 후 소녀가 남긴 세상을 2차례에 걸쳐 만나본다. 홍 양이 다녔던 전주생명과학고는 현장실습 제도를 바꿨고, 그가 일했던 LB휴넷은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재판중이다. 가족들은 더욱 피폐해졌다.
△LB휴넷, 근로기준법 관련 재판중
지난해 6월 LB휴넷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 홍 양을 방치한 잘못을 인정하고 홍 양과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당시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LB휴넷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운영 중단과 감정노동자 보호 대책 마련, 정기적 외부노동감사 시행 등을 합의했다.
LB휴넷 전주센터 임형철 운영팀장은 “이후 오후 6시 이후 사무실 소등을 포함한 물리적 조치로 연장근로를 근절하고 있다”면서 “전주시 정신건강증진센터와 협약을 통해 직원들의 스트레스 조절과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전주센터 가족들도 많은 어려움을 함께 느꼈다”면서 “지역내에서 좋은 직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지난해 11월 말 초과근무를 하고도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 등)로 LB휴넷 구본완 대표를 검찰에 송치했다.
△일부 학과 현장실습제 폐지
이 사건 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가 도마위에 올랐다. 학교가 전공과 무관한 사업체에 현장실습을 보낸 것이 드러나면서 실습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전주생명과학고는 홍 양이 다녔던 ‘애완동물과’에 대한 긴급 진단에 나섰고, 애완동물과를 비롯해 일부 학과의 현장실습을 폐지했다.
김진덕 교감은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현장실습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실습협약서와 근로계약서의 차이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실습을 중단하는 등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교는 3학년 290명 중 46명(15%)만이 현장실습에 나가고 있다.
△아빠는 아직도 ‘악몽’
“가족들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내가 죄인입니다….”
지난해 1월 23일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LB휴넷)에서 근무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 양의 아버지 홍순성 씨(59)는 “1년 동안 나아지지 않았다”며 “몸과 정신이 많이 지쳤다”고 22일 말했다.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가정을 책임진 아버지 홍 씨. 정부 보조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가족은 서로 의지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 노력했다. 지난해 비보를 접한 뒤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지난 11월 홍 씨의 아내 이천옥 씨(50)마저 유명을 달리했다. 평소 혈압이 높은 이 씨가 딸을 잃은 뒤 식당에서 일하다가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아들은 군대로, 홍 씨는 섬으로 들어갔다. 딸의 기일인 23일 아버지는 딸을 묻은 소양강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