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란 단순하고 명료한 개념이 아니다. 그 자체가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주관적 개념이고 외적 환경에 대응하여 상대적으로 형성되는 복합개념이면서 시대와 지역, 사회 환경과 계층, 문화 전통과 신념에 따라 욕구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가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코, 획일화하거나 하나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것이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주기적으로 나라별 삶의 질을 수치화하고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그러나 발표하는 그들조차도 “삶의 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혹시 있다 해도 그건 그의 주관일 뿐 삶의 질 전체를 포괄하는 답변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런 조사 결과를 100% 신뢰하거나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국민이 누리는 삶의 질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그다지 좋지 않음을 참고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도 신년사에서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겠다고 했다. 정량평가가 어려운 약속은 마음먹기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약속을 좀체 믿지 않는 편이지만 정치인들은 계량이 어려운 약속을 좋아한다. 자기들의 공약을 자체평가하면서 항상 100%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꼼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약속만큼은 믿고 싶다. 내가 문재인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편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연을 소중하게 알고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라는 세평 탓만은 아니다. 신년사를 들으면서 “부탄”이라는 나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탄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인구 75만 명의 아주 작은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불에도 못 미치고 문맹률이 53%에 달하는 가난한 나라로 왕이 세습되는 군주국이다. 일부다처제이며 종교의 자유가 없고 군인보다 승려가 많은 불교국가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금연 국가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벌금을 내고 국민은 나라가 규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도 매년 비자 쿼터를 정하여 제한하는 은둔의 나라다. 한편, 부탄은 국민총생산(GDP)보다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의해 나라발전이 결정된다는 국정철학으로 국민총행복(GNH)을 추구하는 특별한 나라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잠룡 당시인 2016년 7월에 부탄에 가서 국왕 직속의 “국민총행복위원회” 관계자를 만나 그들의 정책을 듣고 배웠다고 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부탄의 행복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약속도 했단다. 당선이 확정되고 처음으로 전화 통화한 외국수반이 부탄의 총리였다니 그의 의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삶의 질 개선의 국정 목표를 믿고 기대하는 연유도 여기에 방점이 있다.
사람다운 삶의 조건은 경제적 여유와 정신적 만족, 육체적 건강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최적이 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경제적 윤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재인표 삶의 질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호응해야 마땅하다.
정신적 만족의 가치체계는 사회적 공정과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일상에 만연한 적폐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삶의 질을 높이는 제일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낙하산 인사, 부와 권력의 부정세습이 공공연히 존재하는 한 조금 더 배불리 먹게 되었다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참여와 선택의 기회가 보장되고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달리기하는 문재인표 삶의 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