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벨상을 결정하는 시기가 오면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우리나라 사람으론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원로 문인이지만 추악한 손버릇을 가진 괴물이기도 했다. 그의 손버릇은 뒷담화 같은 소심한 저항을 통해서 이미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그가 이번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 한방으로 문인으로서의 깊은 사유와 경륜은 위선이 되고 틀기만 하면 수돗물처럼 나오던 주옥같은 시는 모두 똥물이 되었다.
또 다른 그가 있다. 수재 중의 수재들이 모였다는 검찰조직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꽃보직만 옮겨 다니며 미래의 검찰총장감으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다. 돈 봉투 사건으로 좌천되자 시대를 탓하며 사표를 집어던진 강단도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도 아주 추악한 손버릇을 지닌 나쁜 사람이었다. 연극계에도 추악한 손버릇을 가진 그가 있고 대학에도 있고 성직자 중에도 있음이 드러났다. 나라 전체가 성추행의 아수라장이 된 듯하다.
그들은 자기 분야와 조직에서 좌장 노릇 하던 어른이나 스승, 상급자로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었고, 여성을 노리개 정도로 여긴 성추행의 상습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 여성이 딸이나 며느리, 여동생이었어도 그랬을까? 동료로, 후배로, 제자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빗나간 성 의식과 물리적 권력이 결합한 최악의 갑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적 갑질이 개인에 국한되거나 일부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변태적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상대의 인격조차 말살해버리는 사람답지 못한 괴물이 어찌 검찰이나 문화예술계에만 있으랴. 성추행과 희롱의 기억을 떠올리며 혹시 자신의 행위가 들통 나서 언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체면을 구기게 될지 몰라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이 사회 곳곳에 숨어있으리라.
검찰 발(發) 미투운동이 문화예술계를 초토화하고 이제 사회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실마리가 된 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 김수희 극단대표 등의 대단한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자칫하면 개인 신상이 몽땅 드러나고 자기가 몸담은 조직에서 매장될 수 있다는 위험과 두려움 그리고 사적인 수치심까지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한 그들의 순교자적 고백이 결코 헛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동계올림픽도 끝났다. 잔치로 들떴던 분위기를 차분히 정리하고 차근차근 챙겨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 적폐청산과 함께 다스 의혹도 명료하게 조사하고 사법처리해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과 파문을 일으키며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미투운동의 고백과 고발을 모두 모아 철저히 조사하고 단호하게 처분하는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지 싶다. 이것이 용기 있는 미투운동 동참자들이 겪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며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으로 속속 드러나는 경악할 사실에 대해 정부에서 모른 척 침묵하거나 소관 타령이나 하고 시효 운운하며 흐지부지 넘어갈까 염려된다. 정부가 침묵의 목격자로서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소관 부처별로 따로따로 챙기기에는 환부가 너무 넓고 복합적인 사회문제다. 그 때문에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범정부적인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어서 사회 전반에 숨어있는 성추행 갑질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엄벌하도록 촉구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미투운동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평등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장과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