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대종사는 3·1만세운동을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라며 제자들에게는 창생을 위한 기도를 시키셨다. 그리고 ‘갑동리와 을동리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
“갑동리에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을동리에는 부자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 사람들을 업수이 여겨, 여러 가지로 둘러먹으며 문서 없는 노예를 삼고 압제를 하면 갑동리에서는 어찌하겠느냐.
갑동리에서는 그 압제를 할 수 없이 받는다. 그들 중 몇몇은 압제 받는 것이 원통하여 을동리에 반항하다 갇히고 죽는 등 설움을 당하고 또 다른 몇몇은 압박 받는 원인을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무식한 까닭인 줄을 자각하게 된다. 을동리와 같이 강자가 되리라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강자의 위치에 앉게 되면, 분풀이 하고 싶어 을동리에 대항하지만 을동리는 모두 강자라 오히려 갑동리 사람만 희생하게 된다. 갑동리에 참 정신을 가진 자가 있었으면 생명 하나 희생하지 않고 강자가 되는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법은, 을동리의 강자들이 압제를 하면, 종노릇을 잘해주며 약자의 분수를 지키고 밖으로는 어리석고 못난 체하여 강자가 안심케 하고, 안으로 자본금을 세우고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가르치며 배우고 서로 권고하되 ‘우리는 돈 없고 배운 것 없어서 약자가 된 것이니 아무쪼록 각성하여 근검저축하며, 배우기를 힘쓰며, 우리 동리가 일심단체가 되고 보면 무엇이 두려우리오. 우리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자’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 노력하면 곧 풍요롭고 지식인이 사는 동리가 될지라, 그러면 을동리의 강자들은 갑동리의 형세를 보고 과거의 무리한 행동을 회고하고 전날의 잘못을 후회하며 용서를 청할 것이니 갑동리 약자들은 스스로 제 일을 했건마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었다.
이러한 빠른 법을 놓고 사람들은 약자가 되면 약자된 것만 원망하고 한탄하며 지리한 압제를 면치 못하고, 또는 혹 선각자라도 편심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덕으로서 감화시키지 못하고 단독으로 서둘다가 생명을 희생하나니 어리석다 아니할 수 없구나.”
갑동리와 을동리로 강자와 약자를 비유한 이 이야기는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사회와 세계의 구조적 투쟁관계를 통찰하고 화합과 협력으로 평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원리와 방법을, 약자로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며, 강자로 진화할 방법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갑동리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요즘 트럼프 미국 정부가 보여주는 한미FTA 폐기와 보복관세 예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등 강대국의 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약자인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이미 100여 년 전에 소태산대종사는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물론 강하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더 강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자기를 능히 이기는 사람은 천하의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이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나, 욕심에 불타는 나, 방종에 흐르는 나를 이겨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