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의 시 한편

▲ 황정현
누군가는 나름대로 이유를 내세워 겨울의 찬가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나는 계절 중 겨울이 가장 싫다. 무엇보다 추위의 칼날이 내 몸에 스치면 괴롭기 짝이 없다. 바람결에 차가운 냉기가 나에게 퍼부어질 때마다 나는 오싹 떨면서 가능한 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피한지를 찾거나 따뜻한 안방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은 겨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얀 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되면 내 마음도 함께 하얗게 채색되어 간다. 보고 싶은 마음도 그리움으로 까맣게 타버린 가슴도 하얗게 채색되어 또 다른 사랑이 꽃이 되어 아득한 그리움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함박눈을 보면 더욱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전설이 내 귀에 들릴 듯싶다. 동심에 빠져들고 저 깊고 넓은 눈의 춤사위에 나도 흔들며 둥둥 떠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현실의 삭막하고 힘든 삶의 생채기를 잠시 잊은 채 천지에 내리는 눈들이 만들어 낸 하얀 군무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눈 내리는 산촌을 하염없이 걷는 연인들을 보면 무대에 등장하는 연극의 주인공들처럼 느껴진다. 도란거리는 사랑의 밀어조차 흰 눈처럼 맑고 순수한 정으로 가득 찰 듯싶다. 날리고 흔들리며 하강하는 눈과 더불어 나도 가볍게 춤추듯 걷는다.

 

내 마음을 채우는 생기가 눈의 군무와 어우러져 천지간에 퍼지면 기쁨으로 시심(詩心)이 솟는다.

 

적막강산을 하얗게 뒤덮으며 내리는 눈의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락사락 내린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소르락소르락 내린다고 써야 할까. 아니 이런 의성어는 눈의 춤사위를 표현하는 시어가 아니라는 감정이 앞선다.

 

아득한 하늘, 저 위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내리는 눈의 소리가 시가 되어 학춤으로 날아오르는 아스라한 광경을 표현해 볼 일이다.

 

<전략> 천지는 순백의 그림책이다/무수한 눈의 혼들이 저마다/외로운 율동을 기억한 채/묵묵히 냉랭한 여행을 떠나며/하얗고 하얀 종교를 만났구나/처량하도록 가볍게 내려와서/새벽 기도를 어루만지고/천지신명을 유혹하더니/바람의 장단에 맞추어/춤을 추었던 소리를 찾는가/종적도 없이 사라지는/허망한 춤을 추었던 설아/거룩하다/안타깝다/슬프다

 

나는 시의 말미에 눈에 대한 떨림, 가벼움과 열광의 지순한 감상에 젖어 ‘거룩하다/ 안타깝다/ 슬프다’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새벽꿈에 홀연히 결미의 시어가 너무 눈답지 않고 눈의 춤으로 날고 있던 장쾌함을 흔들어 놓는 딱딱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고 고민하며 고쳐 쓰느라 잠이 달아났다. 고요하고 처연한 밤 풍경이 선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 내리는 밤 어머니와 싱건지를 꺼내먹던 옛 시절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의 세계를 시의 세계에 비벼 넣으려니 별별 생각과 상념이 뇌리에서 떠돌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비비적대다 뭔가를 썼는데 스르르 잠이 다시 찾아왔다. 내 감각으로 금방 깊은 잠이 든 듯싶었는데 비몽사몽 간에 아내가 내 얼굴에 언어의 소나기를 퍼붓고 있었다.

 

시를 짓는 과업은 크든 작든 시련을 겪으며 쓸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거룩하다, 안타깝다, 슬프다, 라는 직설적이거나 작위적인 연민을 다소 부드럽고 은유가 스민 시어로 바꾸어야 좋겠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떠올라 고심 끝에 나의 의중에 맞는 의미의 시구로 고쳐 썼다.

 

거룩한 군무(群舞)를 지어/어둠 속을 날았던 사랑의 설/바람에 실려간 꿈이 그립다.

 

△황정현 씨는 계간 『시선』과 『에세이 문학』을 통해 시와 수필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계절의 연가> 가 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북문예 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