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솔, 전택이 왔습니다.”
낮게 소리친 호성의 뒤로 전택이 따라왔다. 계백은 전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택은 신라무장 차림이었는데 연락과 감시역으로 파견되었던 장반과 유권도 데리고 왔다.
“장군, 준비 다 되었습니다.”
어깨를 편 전택이 계백에게 군례를 하면서 말을 잇는다.
“가족은 처가가 있는 산골로 보냈으니 이젠 마음놓고 죽을 수가 있게 되었소.”
“죽으면 되나?”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살아서 영화를 누려야지. 그래서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전택이 따라 웃었고 계백이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화청과 해준이 소리쳐 기마군을 정돈했다. 다시 출발하려는 것이다. 이곳은 삼현성에서 10리쯤 떨어진 골짜기다. 길잡이 역할을 할 전택을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터라 밤길을 달려야 한다. 다행히 삼현성까지 오는데 농군 몇 명만 보았지 신라 순찰대는 만나지 않았다. 이제 앞에 삼현성 보군대장이며 급벌찬 벼슬인 전택을 내세웠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출발!”
말에 오른 계백이 소리치자 기마군 3백이 움직였다. 이제는 소음을 죽이고 행군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말들도 울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유신이 전령의 보고를 받는다. 이곳은 신라 덕천성, 김유신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장군, 백제군이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쪼개져?”
청 안이 조용해졌고 김유신이 치켜뜬 눈으로 전령을 보았다. 전령이 소리쳐 말을 이었다.
“예. 기마군 2만여기가 쪼개져서 남하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진시(8시)경이었으니 지금쯤…….”
“2백리는 갔지 않겠느냐?”
김유신이 대신 말을 받았다.
“기마군 2만이라고 했느냐?”
“예, 속보로 남하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전령은 12품 대사 직급으로 전장에 익숙한 30대다.
“백제왕의 깃발은 그대로 진영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전령을 응시했으나 눈의 초점이 떤다. 이윽고 김유신이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전군(全軍)을 출동 준비 시켜라.”
“예, 대장군.”
부장 서준이 대답부터 하고나서 묻는다.
“어디로 갑니까?”
“안곡성으로!”
“예, 대장군.”
“한시진 후에는 출발이다.”
김유신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안곡성에 전령을 보내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해라!”
“예, 대장군.”
청 안의 무장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제각기 떠났는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안곡성은 신라 국경에 위치한 산성(山城)으로 백제군이 주둔하고 있는 영암성 근처의 황야와는 50리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백제측에서 보면 신라군이 공격해 오는 것으로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