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군은 이제 속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야성까지의 거리는 1백리, 신시(4시)까지는 닿게 될 것이다. 속보로 달리는 계백의 옆으로 장덕 화청이 다가왔다.
“나솔, 강행군이니 대야성 근처에서 쉬었다가 진입해야 합니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선봉군은 이틀 후에야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 남방(南方) 방령 윤충이 이끄는 대군(大軍)에 앞서 한솔 협반이 선봉군 3천과 함께 이틀 후에 닿을 것이었다.
그래서 선봉군이 오기 전에 성문을 탈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빨리 탈취해도 다시 빼앗긴다. 신라군은 안팎에서 공격을 해올 테니 역부족이다. 계백이 화청에게 말했다.
“전령보다 빨리 대야성에 닿아야 돼. 대야성 안으로 들어가서 말을 버리고 은신했다가 선봉군이 왔을 때 안에서 성문을 여는 것이야.”
본래의 계획은 하루 전에 진입하는 것이었지만 이틀전에 성 안으로 들어가 잠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계백의 어깨에 3백 결사대뿐만 아니라 3천 선봉군이, 그 뒤를 따르는 윤충의 2만 기마군의 운명이 걸린 셈이다.
유천 검문소 군사가 몰사했다는 보고는 다음날 오전 오시(12시) 무렵이 되어서 정안성주 김길생에게 전해졌다.
“무엇이?”
놀란 김길생이 눈을 치켜뜨고 되물었다.
“몰사했다니? 백제군의 기습이란 말이냐?”
“예, 지난번처럼 백제 유격군이 휩쓸고 지난 것 같습니다.”
“다 죽었어?”
“소장 이하 17명이 모두 죽었소.”
순찰조장의 목소리가 청을 울린 것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말발굽이 수백개 찍혀져 있었습니다. 백제군이 기습한 것이오.”
“아니, 그렇다면….”
그때 관리 하나가 나섰다.
“성주, 군주께 전령을 띄워야 할 것 같소. 이곳이 주성(州城)으로 가는 길목이니 서둘러 보고를 하시지요.”
“아니, 그것보다도….”
이맛살을 찌푸린 성주가 꾸짖듯 말했다.
“무조건 아이처럼 보고만 하는 것이 성주가 할 일이냐? 언제 무엇한테 어떻게 당했는가를 자세히 알아보고 보고를 해야 하지 않는가?”
백번 맞는 말이었지만 속셈은 보고를 들은 군주로부터 질책을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길생이 건의한 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유천 검문소에 가서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오너라.”
“예, 성주.”
성주의 본성을 아는 관리가 몸을 돌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대야성으로 떠날 전령이 한나절 늦어졌다.
그 시간에 선봉 기마군 3천기를 이끈 남방군 소속 한솔 협반이 박천성 남쪽 20리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곳은 산라 국경에서 안쪽으로 2백리나 들어온 곳이다. 3천 기마군이면 예비마까지 포함해서 4천필의 말떼가 달리는 것이니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멀리서는 천둥이 우는 소리로 들린다.
“기마군 수천기가 동쪽으로 뜁니다!”
나는 듯이 달린 순찰 기마군이 박천성주에게 보고를 했고 이쪽 성주는 기민했다. 주성(州城)으로 전령을 보내는 한편 봉화를 띄웠다. 그러나 봉화는 3번째에서 뚝 끊겼다. 봉화대의 군사는 많아야 10여명. 계백의 결사대가 도중의 봉화대 2곳을 드문드문 잘랐기 때문이다. 한 곳만 잘라도 그 뒤쪽은 장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