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다

▲ 오제운 前 신태인고 교장·부안문인협회 회원
2017년 2월 26일! 나에게 평생 잊혀 지지 않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K대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이전 8월, 그리고 그해 1월, 두 아들을 장가보내고 부부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2월 24일 종합 검진 결과, ‘이하선 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알았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 되다니! 믿어지질 않았다.

 

나는 인생을 3막으로 생각했다. 1막은 배움, 2막은 부양, 3막은 황금빛 인생의 과정! 이제 바야흐로 인생 2막을 마무리하고 제 3막에 들어서려는 상황이라 조금은 억울하고 서러웠다.

 

이제 황금빛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1년 남겨놓고 있었는데….

 

그해 3월 11일 퇴원 뒤, 4월부터 전주에서 K대 병원까지 통원 치료를 했다, 그것도 32번의 방사선 치료를.

 

그런데 25번 이상이 되자,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미각이 사라져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어 미음을 석 달 동안 먹어야 했고, 수술 부위가 당기고 얼얼하여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했듯이 그런 고통 또한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면 무아지경에 빠지려고 단전호흡과 명상을 했으며, 아내와 함께 매일 등산을 했다.

 

더불어 수술 부위의 신경을 회복하기 위해 C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암 또한 초기에 발견했고, K대 병원에서 간호를 잘 받았다. 퇴원 뒤 직장에서는 직원 및 K교감 선생님의 응원의 힘이 컸으며, 특히 C대 병원 물리치료과 S선생님의 심신치료는 나의 영적 에너지를 증가시켰다.

 

C대 병원에 들어서면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S선생님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항상 웃는 모습으로 지쳐있는 나의 심신을 치료하면서 그간 환자들을 보고 느꼈던 체험담을 말하기도 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씀으로 나를 항상 즐겁게 했다.

 

또 아들들이 제안한 퇴직 때 부를 노래를 선곡해 주었다. 곡명은 노사연이 부른 ‘바램’이었다. 기타를 손에서 놓은 지 30년이 넘어 자신이 없는 나는 ‘S’기타 학원에서 한 달간 지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을 배워도 쉽지 않아 ‘H’친구에게 부탁해 듀엣 제안을 했고, 그 친구 또한 흔쾌하게 응해주어 네 차례 연습을 같이 했다.

 

드디어 2018년 2월 22일 명예퇴임식 날! 친구, 지인 및 제자, 선생님들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J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제자 ‘형미’의 축시 낭송이 끝난 뒤, 그간 준비한 ‘바램’을 불렀다. 긴장을 한 탓인지 전주를 놓치고 말았다. ‘H’친구가 그래도 잘 이끌어 주어 노래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 구절을 나직이 읊어 본다. ‘우린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