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증언자들이 겪는 대표적 고통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던 피해자의 경우 술 한 잔을 먹을 때도, 웃는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단다. 일상 활동의 제약과 함께 미투 이후 동료들이 껄끄럽거나 부담스럽게 여겨 본래 활동했던 공간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증언자에게 피해자가 누군지 밝히라는 요구나, 주변에 다른 피해자를 더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의 호기심어린 관심 역시 증언자와 피해자에게 또다른 부담과 상처를 주는 후유증으로 지적되고 있다. 익명으로 ‘미투’에 동참했던 피해자들도 SNS상 신상털기와 의혹제기, 공개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받는 등의 피해를 겪고 있단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런 식의 사회적 접근이 이뤄지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은 결코 개인의 한풀이장이나 특정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차원에 머무를 문제가 아니다.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들을 성적으로 짓밟아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발본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투가 폭로된 일부 기관에서 개인 문제로 치부한 채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미투운동의 엄중한 의미를 간과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북대에서 강사와 조교가 잇따라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됐으나 대학 차원의 공개적 사과나 재발방지를 위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 도마에 올랐다. 전주대가 연극 전공 모 교수의 제자 성추행과 관련해 총장 이름으로“사태의 진위와 죄의 경중을 떠나 이를 예방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학 교직원 모두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문을 낸 것과 대비된다.
구조적 악을 방치한 기관들의 통렬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 부조리를 고발하고 개선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지 않는 한 미투운동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