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53) 3장 백제의 혼(魂) ⑫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북이 울리고 있다.

 

“전고(戰鼓)입니다. 선봉군이 지난 성에서 세 번째 전령이 왔습니다.”

 

진궁이 말했다. 방금 진궁은 내성에 들어가 분위기를 살펴보고 온 것이다. 유시(오후 6시) 무렵이다.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무장들은 출전 준비를 마쳤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둘러선 무장들에게 말했다.

 

“죽으면 후생(後生)에서 만나세.”

 

그때 화청이 픽 웃었다.

 

“나솔, 그런 출진 인사는 처음 듣소.”

 

“이 사람아, 목숨을 바쳐서 싸우라는 인사는 너무 많이 써먹었어.”

 

그러자 해준이 말을 받는다.

 

“저도 부하들한테 써먹지요. 후생이 있다니 든든해집니다.”

 

마구간 안 분위기가 가벼워졌고 신라 항장(降將) 격인 전택이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후생에서 신라 성골 왕족으로 태어나 또 투항하지요.”

 

“앗하하.”

 

한족 출신 화청이 소리내어 웃었다.

 

“신라 뼈다귀에 한(恨)이 맺혔구려.”

 

“출진.”

 

그때 계백이 말하자 모두 입을 다물더니 마구간을 나갔다.

 

“나솔, 내가 앞장을 서겠소.”

 

마구간을 나온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계백과 진궁은 1백명을 이끌고 북문을 먼저 점령하기로 한 것이다. 그 뒤로 화청이 이근 1백명이 근처 민가에 불을 지르고 해준과 전택은 뒤를 맡는다. 계백이 뒤를 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신라군 차림이었는데 굳어진 표정이다.

 

“대야성을 빼앗으면 너희들이 1등 공을 세우는 것이다.”

 

계백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울렸다.

 

“생사(生死) 불문하고 너희들에게 포상이 따를 것이다! 1등 공 포상이다!”

 

백제땅 칠봉성에서부터 따라온 군사들이다. 지난번에 계백과 함께 신라땅을 무력정찰로 휘젓고 다닌 군사들인 것이다. 군사들의 눈빛이 강해졌다. 진궁을 앞세운 백제군은 폐마장을 벗어나 북문을 향해 다가갔다. 성 안에는 계속해서 북이 울렸고 주민들과 군사들이 어지럽게 섞여 이동하고 있다. 가끔 스쳐 지나는 무장(武將)들이 진궁을 보고는 건성으로 인사를 했다. 이쪽도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터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군사들을 배치하는 상황이어서 부대 이동이 많기 때문이다.

 

“대아찬, 어디 가시오?”

 

이제는 어두워져서 가깝게 다가가야만 얼굴이 보였는데 불쑥 묻는 소리에 진궁과 함께 계백도 머리를 돌렸다. 무장 하나가 군사들을 이끌고 가다가 진궁을 바라보고 물었던 것이다.

 

“오, 아찬 아니신가?”

 

안면이 있는 무장이다.

 

“나는 예비병을 이끌고 북문 수비를 도우라는 명을 받았소.”

 

“난 동문이오.”

 

손을 들어 보인 무장이 군사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저 자도 진골 왕족이오. 곧 배치가 되고 자리를 잡으면 내가 명을 받았는지 확인을 할 것이오.”

 

계백은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그들은 곧 북문이 보이는 낮은 동산에 올랐고 곧 내려가기 시작했다. 3백 백제군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앞장서서 걷던 진궁이 생각이 난 것처럼 머리를 돌려 계백에게 말했다.

 

“나솔, 대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말보다 군사들에게 포상을 내건 것에 감동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