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9일 전주 완산경찰서 평화파출소를 찾은 90대 노인은 “50대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환경미화원 살인사건 피해자 A씨의 아버지다. 이달 초 A씨 딸의 결정적인 제보로, 가출신고는 강력사건으로 바뀌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직장동료인 피의자 이모 씨(50)는 도주 끝에 붙잡혀 살인 혐의를 자백했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 ‘환경미화원 살인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배경에는 완산구청과 경찰의 부실한 대처 논란도 지적되고 있다.
△ ‘팩스 휴직’ 맹신한 완산구청
22일 오전, 이 씨가 A씨의 가짜 휴직을 내기위해 진단서를 발급한 것으로 돼있는 경기도 모 병원의 대답은 간단했다. A씨는 이 병원에서 입원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이 병원은 이 씨가 허위진단서를 꾸며내기 위해 이름(상호)이 도용된 곳이다. 해당 부병원장은 “우리 병원의 진단서 양식은 A씨가 제출한 것과 전혀 다르고, 직인도 틀리다”면서 “오히려 우리 병원이 이런 사건에 휘말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화 한 번으로 이 씨의 ‘연극’이 쉽게 드러났지만, 전주 완산구청은 이런 간단한 확인조차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해당 병원은 경기도 소재인데, 이 씨가 A씨의 병가와 휴직서류를 팩스를 보낸 곳은 ‘광주광역시’였지만,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17년간 근무한 A씨의 급작스러운 휴직과 급여 계좌 변경 등을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고 처리한 완산구청의 부실한 직원 관리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전주시는 직원 관리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했다. 다만 “A씨가 평소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병가를 낸 적이 있다”며 “사망 추정일 이후 병가, 휴직도 크게 오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앞으로 휴직·병가 등 직원이 제출한 서류의 진위를 더 꼼꼼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범죄혐의 없으면 가출은 미궁?
경찰은 지난해 11월 29일 A씨 아버지로부터 가출신고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경찰은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성년자, 여성, 장애인, 치매환자 등은 영장청구가 필요한 통신수사 등을 실시한다. 여기에는 ‘범죄혐의가 있는’ 가출자도 포함된다.
그러나 A씨는 일반 가출자로 분류됐다.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지 8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별다른 범죄혐의는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완산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계는 가족과 지인에게 A씨의 행방을 묻고, A씨 원룸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경찰은 일반가출로 분류했기 때문에 통신수사와 건강보험공단을 통한 진료기록 확인은 하지 못했다.
경찰은 그러는 중에도 피의자 이 씨에게 속았다. 가출 신고를 받고 주변 조사에 나선 경찰관에게 피의자 이 씨는 “A씨가 병가를 냈다”고 뻔뻔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적인 한계점도 있다. 당시 완산경찰서 실종 관련 업무 직원은 1명이었다. 그가 맡은 가출사건은 50여 건이고, 하루 평균 8~10건의 가출신고가 추가로 접수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이영학 사건’으로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인력이 보충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가 A씨 가출건을 꾸준히 확인했다”면서도 “가족과 완산구청을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수상한 점을 확인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일선에서는 범죄혐의가 없는 가출신고 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추적이 어렵다.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면서도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를 거쳐 보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