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65) 4장 풍운의 3국(三國) ④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비켜라!”

 

연개소문이 소리치자 무장들이 물러섰다.

 

뒤쪽의 비명과 외침은 어느덧 줄어들고 있다. 군사들의 살육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다가서자 영류왕이 소리쳤다.

 

“네, 이놈! 이 역적!”

 

“너는 왕의 그릇이 아니다. 건무야!”

 

연개소문이 따라서 소리치고는 오른손에 쥔 칼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왼손의 칼을 영류왕 앞으로 던졌다. 칼이 쇳소리를 내면서 청 바닥에 떨어졌다.

 

“건무, 칼을 집어라!”

 

연개소문이 소리치자 영류왕이 칼을 집어 들었다.

 

“네 이놈, 연개소문.”

 

“건무야, 날 죽이면 군사들을 물러가라고 하마.”

 

칼을 중단으로 겨눈 연개소문이 정색하고 소리쳤다.

 

“자, 오너라!”

 

영류왕이 칼을 치켜들고 뛰었다. 거리는 세 발짝. 한 발짝을 뛰고 나서 두 발짝째는 추켜올렸던 칼로 연개소문의 머리통을 내리치면서 발을 디뎠다.

 

그 순간이다.

 

“앗!”

 

영류왕의 입에서 외침이 터졌다. 30년 전, 수의 대군을 맞아 을지문덕과 함께 싸워서 물리친 건무(建武) 영류왕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건무가 아니다. 연개소문이 몸을 비틀면서 옆으로 후려친 칼이 영류왕의 배를 갈랐던 것이다. 그 순간 내려친 칼이 청 바닥을 때리면서 배가 갈라진 영류왕이 몸을 숙였다. 그때 칼을 치켜든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죽어라!”

 

연개소문의 칼이 영류왕의 목을 자 머리통이 떼어져 청 바닥에서 굴렀다. 영류왕 25년 10월이다. 그때는 이미 살육이 거의 그쳤고 청에는 도살된 2백여명의 고구려 고관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다. 서있는 군사는 모두 연개소문의 부하들이다. 고구려국 고관 대부분이 도살되었다. 살아남은 고관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이곳은 대야주 대야성, 의자대왕의 친위군이 도착했을 때는 계백과 선봉대장 협반이 대야성을 장악한 지 나흘 후였으니 빠른 기동이었다. 남방방령 윤충은 이틀 먼저 출발했지만 의자왕의 친위군보다 겨우 하루 먼저 대야성에 들어온 것이다. 대야성에는 백제 기마군 3만5천기가 운집해 있었기 때문에 2만기 정도는 성 밖에 진을 쳐야 했다.

 

“장하다.”

 

이미 전령을 통해 내막을 상세히 보고받은 의자왕이 계백과 협반에게 말했다.

 

“특히 계백이 대공을 세웠다.”

 

“황공하오.”

 

계백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의자를 보았다.

 

“대왕, 운이 따랐을 뿐입니다.”

 

“그 운을 네가 만들지 않았느나?”

 

닷새 전만 해도 김품석이 앉았던 옥좌에 앉아 의자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원인이 없는 운(運)은 없는 법이다.”

 

의자가 옥이 박힌 의자를 손바닥으로 쓸면서 말을 이었다.

 

“김춘추의 딸은 제 손으로 자결을 했다니 지아비를 따라갔구나.”

 

김품석의 부인이며 김춘추의 딸 소연은 칼로 가슴을 찌르고 자결을 한 것이다. 그때 윤충이 말했다.

 

“주성(主城)을 함락하고 군주(軍主)의 목을 베었지만 대야주에 42개 성이 있습니다. 서둘러야 될 것이오.”

 

“그렇다. 사기가 꺾였겠지만 아직도 대야주에 수만의 군사가 남아 있다.”

 

머리를 끄덕인 의자가 지시했다.

 

“가야주는 본래 가야국이었던 땅, 신라국에 죽기로 충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투항하면 지위를 보장하고 옛 가야국 호족은 능력에 따라 고위직에도 임명한다고 해라!”

 

신라는 골품제가 박혀 가야 출신 호족들을 박대해온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의자왕이다.

 

의자의 시선이 다시 계백에게 옮겨졌다.

 

“계백, 이번 싸움에 가야족인 네 장인이 죽었느냐?”

 

의자가 진궁을 장인이라고 불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