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러 익산의 춘포(春浦)로 달려갔다. 춘포의 우리말 이름은 ‘봄개’, 봄이 오는 물가라는 뜻이다. 순창에서 출발하여 벚꽃과 경쟁하듯 도착한 만경강의 춘포나루에는 미리 도착한 녀석들이 벌써 꽃분홍 색으로 봄을 알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봄소식을 태운 강줄기들은 그렇게 춘포를 거쳐 바다로 가고 있었다.
익산은 지난 5년간 국내가이드를 하며 무수히 들렀던 곳이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의 인솔은 보석박물관과 미륵사지를 보고 ‘마’로 요리된 식사를 하며 지나만 가야하니 참 많이 아쉬웠다. 직업으로 삼던 여행을 접고 순창에 방랑싸롱이란 공간을 오픈하여 문화를 기획하고 지역에 활기를 만들어 가던 차에 다시 한번 익산을 찾았다. 여행과 문화를 접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익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다.
△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기차역, 춘포역
춘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춘포역이 있다. 과거 광활한 평야에 비옥하기까지 한 춘포는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어마어마한 쌀이 생산되니 일본인들은 큰 마당이라 대장(大場)이라 부르며 군산의 쌀 저장고인 장미동(藏米)까지 보내느라 굉장히 번화하고 융성한 동네였다.
사실 호남선이 익산을 통과하게 된 것은 철도 노선을 두고 벌인 당시 일본인 농장주들의 암투 때문이다. 김제에서 삼례를 통과하기 원했던 동산농장의 이와사키와 대야를 통과하길 원했던 군산농장의 오쿠라의 대립으로 그 중간인 솜리(이리)로 열차가 통과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지금은 오두막 같은 건물 하나 뿐이지만 그마저 없애지 않고 남겨주어 감사하다.
△ 익산 역사가 담긴 명소들
살랑이는 봄바람을 느끼며 춘포나루 뚝방길을 따라 춘포역으로 가는 길엔 그 옛날 기세가 등등 했을 호소가와 농장 관리인 에토의 가옥을 볼 수 있다. 개인소유로 내부관람은 불가 하지만 담장 밖으로 보기에도 그 위용에 압도 된다. 마침 집 주위로 피어난 벚꽃 때문에 문득 일본 교토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옥의 반대편 길을 따라 가다보면 지금은 폐허가 된 정미소가 나타난다. 일본까지 그냥 가져가기엔 여러모로 불리했을 쌀들을 겉껍질만 도정했던 곳으로 당시 농장의 마름이 운영했던 곳이다.
역시나 내부관람은 금지 되어 있지만 활용가치가 높은 건물들은 무엇이 되어도 멋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우뚝 솟은 빨간 건물은 대장교회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치열했던 기독교 선교의 흔적이다.
△ 사람 사는 곳 들여다보기
작은 동네를 종으로 횡으로 지나다니다보면 가끔은 일부러라도 방향을 잃는다. 지도에도 없는 작은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고양이와의 눈맞춤도 좋고 궁금증이 많은 동네 아주머니와의 대화도 즐겁다. 어쩌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많은 재미를 찾을 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다변화 되고 세밀화 되면서 나만의 여행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거창하고 유명한 관광지 보다는 작지만 자세하고 깊이 볼 수 있는 곳이 선호된다.
익산에서 봄바람으로는 부족해 더 많은 봄을 느끼고 싶었다. 마침 익산 북부시장의 장날(4일,9일)이라 봄내음을 맡으러 갔다. 익산장은 전북 최대의 정기장이며 전국에서는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큰 장이다.
날이 좋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 소쿠리에 한 가득 풀어놓은 봄나물들이 코를 간지럽힌다. 그 냄새가 좋아 사지도 않을 흥정을 하며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많은 나라를 여행 했지만 재래시장만큼 그 지역과 사람을 이해하기 좋은 장소는 없다. 전국의 전통장이 쇠퇴해 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행히 익산장은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추진하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2016년에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정부로 부터 내, 외국인이 문화 예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장, 야외공연장, 문화창작공간의 설치를 지원받고, 문화,관광컨텐츠 개발의 사업 또한 지원 받는다. 비로써 전통장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즐기는 공간이 되어 간다. 우리네 장은 싼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공간이다.
△ “ 근대문화유산, 다크투어리즘 개발되길”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오래된 것이 인정을 받고 관광지가 되어 가는데 우리나라는 일제의 잔재라 하여 없애고, 보기 싫다 부수고 남아나지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째든 작지만 가치 있는 춘포역을 철도청으로부터 무상 임대 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컨텐츠를 입혀가는 익산시 관계기관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단순히 유산을 넘어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을 통해 지역문화의 장으로 변모시키려는 익산문화재단에도 감사하다.
지난해에 진행했던 춘포 근대문화유산 도보 트래킹은 최근 여행업계에 부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행사였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처럼 개인적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전국에 산재한 침탈의 역사현장을 둘러보고 반성하는 투어가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지역 공동체 사업으로 진행되는 춘포문화학교는 마을공동체 회복과 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4회째를 기다린다. 쇠퇴해가는 지역과 역사를 문화로 융성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가치 있고 재미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익산에서 봄은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를 한다. 직업이기도 하거니와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여 어느 지역이나 나라를 여행하든 마치 습관처럼 유명한 필터커피집을 찾는다. 마침 전북대 익산캠퍼스 근처에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집을 발견하여 젊은 사장님이 내려주신 맛있는 커피로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