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72) 4장 풍운의 3국(三國) ⑩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사신 일행은 22명, 모두 말을 탔기 때문에 빠르다. 하루에 3백리를 목표로 삼고 1천리 거리인 평양성까지 나흘 일정으로 잡았으니 강행군이다. 둘째날에 일행은 백제령 동방(東方)을 지나 북방(北方)으로 들어섰다. 북방만 지나면 신라 신주(新州)를 통과해야 된다.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신라령이 가로막힌 셈이지만 허술하다. 그만큼 신라 전력(戰力)이 약해진 것 때문이기도 하고 면적이 넓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계백의 옆에서 속보로 달리던 부사(副使) 화청이 생각 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한솔, 제가 20여년 전 태원유수 이연의 휘하 군관이었다면 믿으시겠소?”

 

“이연?”

 

놀란 계백이 화청을 보았다. 화청은 49세, 장년이다. 20여년 전이라면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화청은 귀화한 한인이다. 그런데 이연이 누구인가?

 

이연은 당(唐)의 고조(高祖)를 말한다. 지금의 당황제 이세민은 이연의 아들이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소장은 태원을 탈출해서 동쪽의 백제령으로 피신했다가 내해(內海)를 건너 본국으로 온 것입니다.”

 

“진양(晉陽)에서 이곳까지 먼길을 오셨구려.”

 

“나는 이연의 모반을 수양제에게 밀고하려다가 발각이 되었소. 내 가족은 모두 이연에게 몰살당했소이다.”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수양제(煬帝) 양광(陽廣)이 죽은 것은 20여년 전이다. 화청은 양제의 충신인 셈이다. 수(隨)는 3대 37년만에 태원유수 이연(李淵)에 의해 멸망되었는데 이연의 둘째 아들 세민(世民)의 공이 컸다. 그러나 이연은 태자 건성을 후계자로 삼았다. 건성은 이세민의 형이다. 결국 이세민은 형 건성과 5명의 아들, 동생 원길과 아들 5명까지 모두 죽이고 황제에 올랐으니 지금의 당태종이다.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제 가족까지 몰사시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당태종 이세민의 내력이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힘을 합쳤다면 수나라 말기의 군웅할거시에 천하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북쪽에서 고구려가, 동쪽의 백제령 담로에서 대륙으로 진군하면 반란군은 양국의 깃발 앞에 모였을 것이고 이연 또한 무릎을 꿇었겠지요.”

 

가능한 일이다. 수 문제(文帝)때 대륙을 평정한 최전성기 시절에 수(隨)의 인구는 890만호 4,600만이었다. 그러나 수십개 이민족을 합친 호구수인 것이다. 그러나 백제만으로도 69만호 720만 인구이며 고구려는 650만, 신라는 5백만이다. 백제와 고구려만 합쳐도 1400만이다. 단일민족으로 한족 다음의 세력인데다 최강연합군이 될 것이었다.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말했다.

 

“나솔, 아직 기회는 있소. 그래서 내가 지금 연개소문 공(公)에게 가는 것이 아니오?”

 

화청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 배를 붙이듯이 다가와 달린다.

 

그날 저녁 북방(北方)소속의 항안성에 닿은 사신 일행은 성주의 접대를 받는다. 나솔 관등의 성주 국우재는 30대 중반쯤으로 무장(武將)이다. 국경 지방의 성주 대부분이 무관(武官)인 것이다. 이곳에서 국경까지는 30리 거리여서 매일 정찰대가 오가는 최전선 지역이다. 청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국우재가 말했다.

 

“한솔, 내일 떠나실 때 신주(新州) 지리에 익숙한 무관을 안내역으로 붙여 드리지요.”

 

국우재는 사신 일행이 온다는 전령의 기별을 받고 안내역을 준비시킨 것이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자 국우재가 머리를 돌려 둘러 앉은 무관 하나를 불렀다.

 

“하도리, 인사드려라.”

 

“옛!”

 

무릎 걸음으로 앞으로 나온 사내는 어깨가 넓고 팔이 길었다. 다부진 턱, 가늘지만 반짝이는 눈, 그때 국우재가 말했다.

 

“귀화한 왜인으로 16품 극우 벼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