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빛, 온누리에!

행복을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려운일 아냐 한마디 말로도 가능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오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소태산대종사의 대각(大覺)을 기념하며, 원불교 열린 날과 전 교도의 공동생일을 겸하여 원불교의 근원이 되는 날로 이를 축하하는 경절이다. 원불교는 이웃종교들과 달리 소태산대종사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것보다 대각한 날을 경축한다. 물론 탄생도 경축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에 오신 것과 대각을 이룬 것을 비교해 보면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대각개교 경축기간에 원불교인은 영산성지를 순례하며 소태산대종사의 깨달음의 여정과 원불교 초기 교단의 창립정신을 체험한다.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성지 순례하는 사람이 허리에 차고 간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어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많은 사람이 행복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수많은 인류가 그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종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공자(孔子)도 “아침에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깨침이 없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깨침은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아는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 없는 꽃과 같다. 깨달아 아는 것을 실행하면 지혜로운 삶이 되며, 행복한 삶이 된다.

용은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조화를 부리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다. 용에게는 여의주가 다시없는 보물이다. 사람들도 여의주를 가지고 싶어 한다.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의보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끼며, 또한 모든 것이 다 뜻에 맞을지라도 그 만족한 일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기므로, 그로 인하여 재앙을 당하지 않을뿐더러 복이 항상 무궁하다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여의보주를 얻는 방법인 것이다. 행복을 만드는 것,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마디 따뜻한 말로도 가능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을 한 번 깨닫고 보면 모두가 은혜이고 감사이며 행복이 된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그 옆 사람이, 또 그 옆 사람이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하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욕심으로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실행하고 증득하는 데에서 위력이 나타난다.

경산종법사는 대각개교 경축법문에서 ‘시대적 변화를 바르게 선도해 나갈 줄 아는 공부인, 희로애락의 감정에 끌리지 않는 진리적 인격을 갖춘 공부인, 진리의 광명을 따라 허위와 진실을 판단할 줄 아는 공부인, 그리고 우리의 교법을 현실에 구현해 나가는 용기 있는 공부인이 되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주인공으로 살자’고 부촉해주셨다. 깨달음의 빛이 온 누리에 비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