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신 이찬 김춘추가 대고구려 대막리지 전하를 뵈오러 왔습니다!”
그것을 청 안의 집사부 대관이 받아서 다시 외친다. 그동안에 김춘추 일행은 청 아래쪽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
“신라 사신 이찬 김춘추가 대막리지 전하를 뵈오러 왔습니다!”
대관의 말을 들은 계단 밑의 전내부 막리지가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연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이자 막리지가 곧 대관에게 지시했다.
“김춘추를 청에 오르도록 하라.”
“예.”
대답한 대관이 청 아래의 관리에게 소리쳤다.
“김춘추를 청에 오르도록 하라!”
“예.”
그때서야 관리의 안내로 김춘추가 계단을 올라 청으로 들어선다. 김춘추 일행은 여섯. 신라 이찬 복장의 김춘추가 앞장을 섰고 부사(副使) 둘이 각각 비단으로 싼 상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뒤를 따랐으며 셋은 보좌역으로 그 뒤를 따른다. 이윽고 김춘추가 좌우로 갈라 앉은 고구려 고관 사이를 지나 연개소문이 앉은 계단에서 10보 거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미리 관리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때 막리지가 연개소문에게 보고했다.
“전하, 신라 이찬 김춘추가 왔소이다.”
“그러냐?”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처음 울렸다. 연개소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계단 아래쪽 10보 거리의 김춘추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김춘추냐?”
“예, 전하.”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다. 시선이 마주치자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네 여왕이 아직 처녀라던데, 내 측실로 데려올 생각은 없느냐?”
“전하, 고구려, 신라의 동맹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김춘추가 똑바로 연개소문을 보았다. 눈이 맑고 피부는 미끈하다. 곧은 콧날, 입술에는 옅은 웃음기까지 띄워져 있다.
“흠.”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응답에 조금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연개소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백제에게 대야주를 잃고 절박해졌구나. 네 사위가 대야군주 아니었느냐?”
“예, 전하.”
“사위와 딸이 모두 죽었지?”
“예, 전하.”
계백은 김춘추가 심호흡을 하는 것을 보았다. 김춘추는 지금 계백의 바로 앞에 앉아있다. 계백이 옆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백이 고구려 관리 복장으로 앉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