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86) 5장 대백제(大百濟) ②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도망쳤어?”

 

버럭 소리친 연개소문이 눈을 부릅떴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저녁을 먹자고 김춘추를 부른 다음에 창고 옆쪽의 별당에 연금시키기로 결정을 했던 연개소문이다.

 

“예, 부사(副使) 둘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데리러 갔던 관리가 쩔쩔매면서 대답했다.

 

“수행원 장인 중 군관 셋까지 여섯이 비었습니다.”

 

“이놈이.”

 

연개소문이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내려치고 나서 소리쳤다.

 

“잡아라!”

 

“예엣!”

 

대답한 고관은 병관대신(兵官大臣)인 막리지 요영춘이다. 몸을 돌린 요영춘이 청 밖으로 달려나갔다. 전쟁에 익숙한 장수 출신이어서 세세한 지시 따위는 받지 않는다. 연개소문 또한 장수를 부려온 대장군이다. 김춘추 체포를 맡기더니 시선을 돌려 고관들을 보았다. 연개소문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있다.

 

“쥐새끼 같은 놈, 눈치를 채었구나.”

 

“전하, 놈이 경솔했다는 증거올시다.”

 

동생 연정토의 말에 연개소문이 입맛을 다셨다.

 

“나도 방심을 했다. 내 집안이라고 경비를 배치시키지 않았구나.”

 

연개소문의 시선이 고관들 사이에 선 계백에게 옮겨졌다.

 

“계백, 잡았다가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신라가 그만큼 다급했던 것입니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먹을 만한 고기도 아니었습니다. 미련을 버리시지요.”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연개소문에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전하, 저도 내일 백제로 떠나겠습니다. 너무 오래 폐를 끼쳤습니다.”

 

“떠난다니 서운하구나.”

 

눈썹을 모은 연개소문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내가 백제왕께 보내는 서신과 선물을 준비하겠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사시(10시) 무렵에 계백은 연개소문의 전송을 받으며 저택을 떠났다. 고구려 기마군의 호위를 받은 백제 사신 일행의 행차는 볼만했기 때문에 길가에는 구경꾼들이 가득 찼다. 일행이 평양성 남문을 나왔을 때 화청이 계백에게 말했다.

 

“한솔, 김춘추가 말장수한테서 말 7필을 샀다고 했으니 꽤 멀리 갔을겁니다.”

 

말을 판 말장수가 신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야 신고해서 늦었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가 신라 신주(新州)를 지나야 되니 답답합니다.”

 

그렇다. 고구려 남부(南部)와 신라 신주(新州)가 맞닿아있는 것이다. 신주를 통과해야 백제땅이다.

 

“신주를 우리가 차치해야 합니다.”

 

화청이 낮게 말했다. 본래 신주는 신라와 백제가 연합해서 고구려로부터 탈취했던 땅이다. 그랬다가 신라가 배신해서 백제를 밀어내고 신주를 설치했던 것이다.

 

“한솔, 김춘추는 왕의 그릇이 되었습니까?”

 

화청이 말을 몰아 바짝 붙으면서 다시 물어서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

 

“그만하면 신라왕이 될 만한 인물이야.”

 

“그렇습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적지에 온 용기, 그리고 왕국(王國)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연개소문에게는 다르게 말해서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