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의 공존, DMZ 패러다임

▲ 이귀재 전북대 교수(생명공학)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와 공존의 기운이 한껏 솟아나는 봄날이다. 추운 겨울에 평창올림픽에서 싹텄던 남·북의 긴장완화가 어느덧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로드맵의 여정을 재촉하고 있다.

 

△ DMZ 패러다임, 서로가 중심이면서 타자를 포용하는 생태계 사고

 

이 변화무쌍한 현상계의 배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거기서 새로운 미래 정신과 패러다임을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로 때마침 우리는 분단 70년을 맞게 되었다. DMZ는 분단 70년 동안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원시림 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생명(생태)과 평화의 공간이다.

 

DMZ가 다양한 생명으로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70년 동안 자연이 스스로(自) 그러한(然) 모습으로 마음껏 생명의 진화와 질서를 이뤘기 때문이다. 커다란 거목도 때가 되면 소멸하고 거대한 그늘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나무와 솔방울 씨가 자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다. 강력한 포식자도 일정한 개체 수가 넘으면 사냥감이 부족해서 스스로 줄어들고 다시 생태계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생태계의 진화와 질서 속에서 생명과 공존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는 말을 조금 빗대어 “자연에는 중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에는 중심이 없다. 모두가 중심이다. 서로가 중심이면서 타자를 포용하며 공동체의 유기적 발전을 도모한다.

 

△ 리좀 모델, 이질적인 것과의 접속, 다양성과 차이

 

자연과 미시세계를 넘나드는 생물학자로서 항상 수목(樹木)모델과 리좀(Rhyzome) 모델을 가슴에 담고 있다. 수목모델은 거대한 나무줄기를 중심으로 가지와 잎이 딸려있고 숲 전체적으로 고정되고 위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대한 하나의 중심이 아름답고 작은 주변의 생명을 지배하는 모델이다. 이에 반해 리좀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며 식물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리좀은 줄기가 땅 위를 수평으로 기어 다니며 각 마디마다 뿌리(중심)를 내리고 끝없이 뻗어 나간다. 리좀 모델은 넝쿨처럼 유동적이고 수평적이며 서로 이질적인 것과 접속하고 다양하게 차이를 인정하는 세계이다. 서로 중심이 되어 함께 손잡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어느 곳에서든 생명의 뿌리를 내려 (생각의) 영토를 확장한다. DMZ과 리좀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이끌고 한국의 미래를 이끄는 하나의 철학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의 중심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 왔다. 중앙과 상층 중심의 위계적 질서 속에서 창의와 상상력은 억압되었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수의 과도한 부와 불평등, 갑과 을의 관계는 물론이고 대학 사회마저 분권화가 이슈로 대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세계적 리더십으로 이끌었던 한반도의 변화도 사람과 사람이 중심이 되었던 촛불 정신, 소수의 결정 대신에 집단 지성의 공동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던 숙의 민주주의 등 생명과 공존의 패러다임 속에서 새로운 역동성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질적으로 어제와 다른 미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창문(프레임)을 열어야 한다. 생명과 평화의 패러다임과 가치 속에서 지역사회와 대학 100년의 미래가 담겨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