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99) 5장 대백제(大百濟) ⑮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국창은 왕비파입니다.”

 

돌아오는 계백에게 다가온 육기천이 말했다. 육기천의 얼굴은 지금도 상기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요. 왕비파는 국창뿐만이 아니라 그 밑의 한솔, 나솔도 있고 내부(內部) 12부, 외부(外部) 12부에 골고루 박혀 있습니다.”

 

“허어.”

 

계백이 탄식하고 나서 말했다.

 

“난 칠봉성주를 맡기 전에는 대륙의 담로 연남군에 있었소. 본국 사정을 요즘에야 알게 되는구려.”

 

“대좌평 성충님이 대왕께 간언을 드리고 있지만 듣지 않으시오.”

 

육기천이 길게 한숨을 뱉었다.

 

“지금은 국력이 외부로 뻗어나가는 상황이라 왕비파가 가만있지만 기회만 오면 반역을 할 것이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육기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솔께서 왕비파에게 처음 칼을 들이대신 것이오. 이제 곧 왕비에게 오늘 소동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날 밤 한산성 안 계백의 침소 옆 마룻방에 두 사내가 계백과 마주보고 앉아있다. 둘 다 상민 차림이었지만 옆에 장검을 내려놓았으니 변복한 무장(武將)이다. 수군항의 무장 둘이 찾아온 것이다. 하나는 나솔 윤건이며 하나는 장덕 백용문이다. 윤건이 입을 열었다.

 

“한솔, 지금까지 항장은 왕비의 위세를 업고 안하무인이었소. 서방 방령이 오셨을 때 마중도 나가지 않았었는데 오늘 같은 수모는 처음 당했을 것이오.”

 

둘 다 30대 중반의 건장한 체격이었는데 백용문이 말을 받았다.

 

“한솔이 가시고 나서 심복인 문독 하나를 불러 수군거리더니 내일 일찍 도성으로 보내려는 것 같습니다. 틀림없이 왕비에게 사정을 알리려는 것이지요.”

 

“무슨 사정 말이오?”

 

불쑥 계백이 묻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윤건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수군항의 수군(水軍)과 전선(戰船)은 전력이 약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소. 그런데 지난 10여년 사이에 태왕비와 왕비가 수군 쪽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서 어느덧 왕비의 전력이 되었소.”

 

“왕비의 전력(戰力)이라고 했소?”

 

쓴웃음을 띄운 계백이 물었지만 둘은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본국에 수군항이 서방과 남방에 각각 1곳씩 2곳이 있는데 두 곳 항장이 모두 왕비와 통하고 있소.”

 

윤건이 말했다.

 

“병관좌평 휘하의 병관부(兵官部) 달솔 진재덕이 수군(水軍)을 통제합니다. 그 진재덕이 왕비의 심복이오.”

 

“그것을 병관좌평이 압니까?”

 

계백이 묻자 둘이 머리를 끄덕였다.

 

“압니다.”

 

“왕비께서 수군을 장악하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백제는 해상강국이었습니다.”

 

윤건이 말을 이었다.

 

“왕비는 수군이 약한 신라에 백제 수군의 전력과 전선을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대왕께서도 상좌평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수군항의 장수들이 이렇게 갈라져 있을 줄은 몰랐소.”

 

계백이 굳어진 얼굴로 두 무장을 보았다.

 

“나는 해적을 퇴치하려고 한산성주로 부임한 사람이오. 수군항의 수군 전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둘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내가 실제로 국창의 목을 벨지도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