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되새기며 긍정의 힘으로 - 안홍엽

▲ 안홍엽
새해를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다보니 시간이 더욱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상은 그날이 그날이다.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을 상상해 보지만 시간의 역사가 규명해 줄 수밖에 없는 가고 옴의 오묘한 조화다.

 

몇 년 전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서강대학교 장영희 교수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글로 접했다. 저자 ‘헬렌 켈러’는 앞 못 보는 맹인으로 2차 대전 때 부상병구제운동을 주도해 ‘자유의 메달’을 받은 미국인이다.

 

그는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3일 동안 친절과 겸손과 우정, 밤낮이 바뀌는 웅장한 기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며 집에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1933년에 발표된 이 글은 당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 속에서 특별한 대가도 없이 보고 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80여 년이 흐른 오늘 우리에게 헬렌 켈러의 글이 새삼 간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필요해서다.

 

그동안 우리 민족의 숙원이었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옥동자가 탄생한 요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이고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며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고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또한 살고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듯 고통과 시련도 삶의 한 과정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거기에서 찾도록 해야 한다.

 

뒤돌아 보기에도 너무나 아쉽고 민망한 지난날들이었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극복의 꿈만 있다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행운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짐을 한다. 한 점의 착오도 없도록 하기 위하여 우선 삶에 쉼표를 찍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여행 작가 정연희 씨는 “쉼표가 없는 일상은 대팻밥이나 톱밥처럼 우리들 본래의 삶에서 시나브로 깎여 나가는 부스러기가 되고 말 것이다. 쉼표가 없는 문장을 읽으려면 숨도 차고 얼른 터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긍정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겠노라고... 인생을 바꾸는 ‘긍정의 힘’, No가 Yes로 바뀔 때 모든 일은 해피엔딩으로 장식된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은 놀랍게도 긍정의 힘이었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의 역사에 기록될 대사건도 긍정의 힘 때문에 일어났다. “Yes, We Can.” 이 한마디가 미국을 열광케 했다. 변화를 추구하고 희망을 일구어가는 국민임을 세계에 과시했다.

 

모든 유기체는 변화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기회가 왔다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며 긍정의 힘으로 희망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다리자.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타고르의 말이다.

 

△안홍엽 씨는 전주 MBC 편성국장을 역임했으며 퇴직 후에는 원광대, 우석대, 전북대, 백제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한국방송대상과 전북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