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길에서도 웃음꽃 활짝 피워주소서!

시대의 마지막 무애 도인
세상사에 막힘 거침 없이
일평생 바람과 같이 살아

▲ 정동영 국회의원(민주평화당·전북 전주시병)

설악산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이 입적하셨다. 승려시인인 스님의 필명은 조오현, 법명은 무산, 법호는 만악, 자호는 설악이다. 설악무산스님은 올해 승납 60, 세납 87세다. 정확한 입적 날은 26일 오후 5시 11분에 강원도 속초 소재 신흥사에서다.

스님은 우리시대 마지막 무애(無碍)도인이라 일컬어진다. 그 이유는 세상사에 막힘이나 거침이 없는, 그야말로 일평생을 바람과 같이 허허롭고도 시원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무산스님을 대면한 이들은 묵은 화두나 관념의 세계에 갇히지 않은 호쾌함에 매료된다. 혹자는 말하길 스님 앞에만 서면 어줍잖은 종교 갈등이나 남남갈등, 좌익이나 우익 갈등과 같은 속세의 아귀다툼이 무색해진다고 말한다. 스님이 발산하는 평점심에 자신들도 모르게 감화를 받는 이유에서다. 박해받고 억압받는 평화·인권운동가들도 스님의 그물망에 걸리면 영락없이 도움의 대상이 된다. 무산스님의 도량이 이처럼 넓고도 편안한 탓이다.

스님과 필자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도 초입 때였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스님을 처음 뵈었다. 연말, 며칠 전 까지만 해도 필자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로서 전국을 갈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권 여당의 후보로 뛰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됐다. 선거가 끝나자 온갖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힘찬 응원의 박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낙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정체불명의 환청에 정신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이 문제였다. 힐링의 시간이 필요했다. 떠나자. 잠시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곳을 찾기로 했다. 짐을 꾸리며 찾아 갈 마땅한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지금의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이셨다. 강원도 백담사 아래 만해마을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셨다.

가서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저 유랑하는 심정으로 떠난 것이 전부였다. 신산한 마음을 추스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길 고대하며 말이다. 어스름 저녁 무렵이었을 거다. 노(老)스님 한분이 서 계시다가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부부를 반겨주시기 위해 스님은 먼 절집에서 일부러 내려와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설악무산스님이었다.

스님과 함께 했다. 낙엽을 밟으며 바람을 맞으며 오솔길을 걸었다. 차담도 나누고 밤늦도록 곡주도 마셨다. 스님은 나에게 ‘하심’하라는 화두를 주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선거에 떨어진 사람인데 하심 할 게 무엇이 또 있을까” 싶었지만 스님은 내게 자꾸만 ‘하심’ 하지 않으면 무겁고도 처절한 시간을 길게 보내게 될 거라며 되 뇌이고 계셨다. 무언중에 건네는 스님의 웃음이 가슴을 찔렀다.

스님은 또 반야심경의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생각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헛된 생각 멀리 떠나고 없다‘는 말을 들려주셨다. 스님은 그러면서도 특유의 파안대소를 놓지 않으셨다. 득도자의 무념무상이란 저런 것인가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야속한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하심 하라!’ 스님의 거침없는 기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었다. 스님을 따라 웃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어린 시절에 대해 “7살에 절머슴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잤으니 언제공부나 해봤겠느냐“며‘무식한 노승’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학구열이 남달라 대장경 원문을 외워 그대로 암송해낼 수 있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스님은 답답한 관념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창공을 시원하게 나는 천년학과 같은 존재라 여겨졌다.

세인들은 평한다. 그의 시에는, 어릴 적에 절집에 맡겨진 가엾은 동자승의 한이 서려있고, 중생들의 아픔이 녹아들어 있다고. 1966년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스님은 살아서도 수많은 선시와 파격적인 법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자신 마지막으로 읊은 시 즉 열반게송 한편만큼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 시도 다시없을 것 같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이라는 시(詩)다.

“억! 억!” 벼락 한번 제대로 쳐주십니다.

이 아니 날 것 그대로가 아닌지요

억! 소리 한 번 내뱉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억! 소리 한 번 못 지른 삶이었습니다

내 몸 상하게 이를 악무느니

억! 소리 한 번 내뱉을 것을, 내뱉어도 괜찮다는 것을

무산스님 당신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속상한 일, 상처받은 일, 억울한 일 있으면

이제 저도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처럼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일 당한 사람처럼

날 것 그대로 ‘억!’ 소리 그냥 한 번 질러 볼 랍니다.

‘억!’ 소리 내뱉은 인연으로

다음 생에서도 다시금 스님 얼굴 뵙겠습니다.

웃음꽃 활짝 피우며 극락왕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