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104) 5장 대백제(大百濟) (20)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상인으로 변복을 한 계백이 도성에서 대좌평 성충과 마주 앉았을 때는 저녁 술시(8시) 무렵이다. 저택의 밀실에는 지난달 전내부(前內部) 좌평이 된 흥수와 동방방령 달솔 의직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전내부는 내관(內官) 12부 중 선임으로 왕명의 출납을 전담하는 부서이며 성충은 외관(外官) 12부 중 선임인 사군부(司軍部) 장령으로 병관좌평이며 5좌평 중 좌장이다. 내외관(內外官) 각각 12부 중 수석부서의 장이 다모인 셈이다. 동방(東方)은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막강한 군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신라의 대야주는 남방군의 기습전으로 공취를 했지만 백제 주력군(主力軍)은 동방군(東方軍)이다. 계백이 국창의 밀사 양하를 죽인 것부터 어제 수군항 항장 국창 이하 추종 세력들을 수장(水葬)시킨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듣기만 하던 셋의 분위기는 무겁다. 성충이 다시 처음부터 진상을 말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계백이 왔다는 기별을 받자 성충이 둘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먼저 성충이 입을 열었다.

“태왕비께서 살아 계시는 한 왕비의 행동을 저지시키기는 어렵소. 어찌 생각하시오?”

그때 흥수가 계백에게 말했다.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한솔, 나이든 우리가 무기력해서 한솔한테 다 떠넘기는 것 같네.”

“아니올시다. 이제 대감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왕(先王)시대에 해결해야 했어.”

길게 숨을 뱉은 흥수가 성충을 보았다.

“대좌평, 내가 대왕께 수군항 항장을 한산성주 계백이 겸임하도록 상주하겠소. 그러니 병관좌평께서 동의를 해주시면 대왕께서 선선히 받아들이실 것이오.”

“그렇지.”

성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왕비 사주를 받는 8족 놈들도 입을 다물겠지.”

그때 의직이 나섰다.

“국창과 그 일당들이 실종된 것에 대해서 왕비 일파가 의심할 것이오.”

“아직도 수군항에 국창 세력이 남아있을 테니 당연한 일이지.”

머리를 끄덕인 성충이 계백을 보았다.

“한솔, 그대의 공(功)으로 치면 나솔에서 한솔 일등급 승진은 부족했네. 나하고 전내부 장령이신 내신좌평이 그대를 덕솔로 승진시키려고 하네.”

그러자 흥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왕께선 두말하지 않으실거네.”

“역시 덕솔로 수군항 항장까지 겸임하는 것이 맞습니다.”

의직도 거들었다.

“수군항에서 국창의 실종 신고가 올테니 그때 우리가 상주하기로 하지.”

흥수가 결론을 내었고 의직이 계백에게 다시 조언했다.

“이보게, 한솔. 그동안 국창 일파를 면밀하게 탐문해놓게. 한산성이 소속된 서방의 방령 해재용도 지금까지 수군항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어. 해재용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게.”

“예, 방령.”

계백이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갈수록 썩은 뿌리가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하룻밤 묵지도 않고 밤길을 달려 성으로 돌아오던 계백에게 수행한 하도리가 물었다.

“나리, 전장(戰場)에는 언제 나갑니까?”

“무슨 말이냐?”

계백이 말의 속력을 늦추면서 옆을 따르는 하도리를 보았다. 밤길, 두필의 말이 텅 빈 국도를 질주하는 중이다. 그때 하도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차라리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