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113)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⑨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마마, 소신이 당에 가겠습니다.”

 

김춘추가 말하자 선덕여왕이 시선만 주었다. 청안에 잠깐 정적이 덮여졌다. 김춘추는 석달전 고구려에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신라와의 동맹을 제의했다가 오히려 잡혀 죽을 뻔했다.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신라 조정에서 김춘추를 비난하는 무리는 없다. 진골(眞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에서도 김춘추의 용기를 칭찬했다. 이윽고 선덕이 입을 열었다.

 

“가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춘추는 선덕을 보았다. 미인이다. 여왕의 수심에 잠긴 것 같은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즉위 12년, 선덕은 진평왕의 맏딸로 신라에 남은 유일한 성골(聖骨) 왕족이다. 또 하나의 성골은 지금 백제 의자왕의 어머니인 선화공주다. 그러니 의자왕의 부친 무왕(武王)이 신라와의 합병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선덕의 다음 차례는 자신의 왕비 선화공주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를 점령하면 신라 백성들은 합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대답했다.

 

“마마, 당 황제께서 고구려와 백제왕에게 친서를 내려 신라를 더 이상 침공하지 말도록 청원하겠습니다.”

 

“이보시오, 이찬.”

 

김춘추 앞쪽에 서있던 이찬 비담이 나섰다. 비담은 진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좌장이다.

 

“이찬은 모르시오? 이제 바닷길이 막혀서 사신을 싣고 갈 배가 영락없이 백제 수군에게 나포될 상황이오.”

 

김춘추가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고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겁니까? 바다는 넓습니다. 피해가면 됩니다.”

 

“그리고 사신이 간다고 해도 당 황제께서는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거요.”

 

선덕도 단하에서 두 신하가 갑론을박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백제에서 첩자가 달려온 것은 열흘 전이다. 백제 서부(西部) 수군항의 항장 이하 지휘관 10여명이 도륙을 당했고 조정에 잠입시켰던 신라첩자 13명이 잡혀 처형당한 것이다. 첩자 중 4명은 간신히 신라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내막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백제 서부 수군항이 백제군의 수중에 들어왔으니 신라 사신이 탄 배 10중 8, 9는 나포될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머리를 들고 선덕을 보았다.

 

“마마, 소신이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당에 가서 청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구석에 박혀만 있다가는 사직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의 말이 옳다.”

 

마침내 선덕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에 서서 남 탓이나 하고 신세 한탄을 하면 빼앗긴 땅이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선덕의 시선이 비담에게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경의 의견을 듣자.”

 

“마마.”

 

“어찌하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있겠는가?”

 

“마마, 그것은…….”

 

당황한 비담이 눈을 부릅떴다가 곧 내렸다. 선덕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여왕 사후(死後)의 왕위 계승 1순위자다. 선덕이 다시 김춘추를 보았다.

 

“이찬, 곧 떠나라.”

 

“예, 마마.”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지 못하면 곧 당은 등 뒤를 찔려 수나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해라.”

 

“예, 마마.”

 

김춘추는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당장에 목이 잘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