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116)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⑫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서진이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눈이 깊은 우물처럼 느껴졌고 계백은 자신의 몸이 그 우물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눈을 감았다 뜬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년, 요사스러운 말로 홀리려고 드는구나. 멀쩡한 관리들이 대역죄를 범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덕솔께서 저를 죽이셔도 됩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을 보시지요.”

 

서진이 저고리 안에서 붉은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더니 안에서 잘 접힌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계백에게 내밀었다.

 

“태왕비께서 이것을 덕솔께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숨을 들이켠 계백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편지를 펼쳤다. 질이 좋은 종이였지만 오래되어서 접힌 자국이 깊다. 안에 글이 적혀져 있다.

 

“내가 신라왕이 된지 6년, 아직도 전쟁으로 수많은 양국 백성이 고통을 받는구나. 아버님의 뜻이 어서 이루어져서 신라, 백제가 한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동생을 그리는 언니 선덕이 선화에게 보낸다. 선덕 씀.”

 

읽고 나서 머리를 든 계백에게 서진이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도 읽으셨습니다. 덕솔.”

 

계백은 숨만 쉬었고 서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왕께서는 신라 공격을 삼가시고 신라여왕의 기반을 굳혀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옥문곡에서 군사를 되돌려 신라여왕의 계략이 맞도록 만들어주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후로 신라여왕의 권위가 살아났지요.”

 

“…….”

 

“그런데 선왕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왕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선 즉위하신 후부터 신라를 계속해서 공격하셨지요.”

 

“…….”

 

“나리.”

 

서진이 다시 깊은 물 같은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습기가 찬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신라여왕이 죽으면 뒤를 이을 성골 후계자는 태왕비마마 뿐이십니다. 이제 선왕께서도 극락에 가셨으니 태왕비께서 신라로 돌아가 신라왕이 되셔야 합니다.”

 

“무엇이?”

 

계백이 어깨를 부풀리며 물었다. 머리끝이 솟는 느낌이 든 계백이 서진을 노려보았다.

 

“신라로 가신다고 했느냐?”

 

“예, 그러나 대왕께서 보내주실 리가 없으니 몰래 가셔야 합니다.”

 

“허어.”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옆에 내려놓은 장검의 칼자루를 쥐었다.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이년, 단칼에 베어 죽일테다. 입에서 뱀이 나오는 년이구나.”

 

“지난번에 덕솔 연기신이 신라여왕을 만나고 왔습니다. 신라는 비담과 김춘추가 왕위를 노리지만 둘 다 왕이 될 그릇이 아니라고 신라왕이 말했다는군요. 만일 태왕비께서 백제를 탈출해서 돌아오시면 후계자로 지명을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를 듣자.”

 

“이곳 수군항을 통해 배로 신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말을 대왕께 말씀드린다는 것은 예상하고 있겠지?”

 

“예, 덕솔.”

 

서진이 바로 대답하더니 어깨를 늘어뜨렸다. 계백은 아직도 쥐고 있던 장검을 내려놓았다. 눈동자가 흐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