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117)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⑬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마마, 부르셨습니까?”

 

김춘추가 허리를 굽히면서 묻자 선덕여왕이 손을 까닥여 가깝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당(唐)에 사신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배 5척에 당 황제에게 바칠 서신과 공물도 싣고 고관(高官)들에게 은밀히 줄 선물도 실었다. 사신은 정사(正使)에 이찬 김춘추, 부사(副使)에 잡찬 김문생이 지명되었는데 김문생도 진골 왕족으로 비담 일파에 속한다. 비담이 김문생과 그 수하 6명을 끼워넣은 것이다. 사신은 35명, 수행하는 장졸들까지 122명이며 공물을 포함한 짐은 130상자나 된다. 그래서 대선(大船) 2척에 중선 1척, 쾌선 2척의 선단을 구성하고 떠나는 것이다.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여왕의 다섯걸음 앞으로 다가가 섰다. 이 자리가 최고 관직인 상대등, 이벌찬의 위치다. 청 안에는 여왕 뒤에 시녀 둘만 서있을 뿐이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저택에 있던 김춘추는 여왕의 부름을 받고 말을 달려온 참이다. 그대 여왕이 더 가깝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긴장한 김춘추가 다시 두 걸음을 떼어 다가갔을 때 여왕이 낮게 말했다.

 

“더 가깝게 오라.”

 

“예, 마마.”

 

김춘추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다시 한걸음 다가갔다.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여왕은 미모다. 결혼도 하지 않은 터라 아직 피부도 윤기가 흐른다. 그대 여왕이 입을 열었다.

 

“백제 서부 앞바다를 지나게 되겠지?”

 

“예, 마마.”

 

“매년 그 앞바다를 지났지만 백제 수군과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김춘추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예, 수군항에 첩자가 있어서 수군의 출항 일정을 알려주기 때문이 아닙니까?”

 

수군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김춘추는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여왕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아예 수군 선단을 띄우지 않아서 신라 함선과 바다에서 부딪치지 않았다.”

 

김춘추는 눈만 껌벅였고 여왕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은 백제 수군과 바다에서 만날 것 같다.”

 

“마마, 어찌 아십니까?”

 

“백제 서부 수군항 항장으로 계백이란 백제 장수가 왔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대의 사위와 딸을 죽인 놈 아닌가?”

 

“예, 마마.”

 

김춘추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상기되었다.

 

“소신을 고구려에서도 능멸을 한 놈입니다. 마마.”

 

“그대와 전생(前生)에 악연이 있었던 것 같구나.”

 

여왕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전생과 극락을 믿는다. 김춘추가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마마, 바다에서 만나 일전(一戰)을 하더라도 당에 가야만 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머뭇거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 일 때문에 불렀다.”

 

여왕이 똑바로 김춘추를 보았다. 왕위 계승 문제로 화백회의에서 연일 갑론을박을 해도 여왕은 놔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김춘추도 도와주지 않았다. 당(唐) 황제도 “신라는 여왕이 다스리기 때문에 약해진다”고 대놓고 사신에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나라에 대한 충심(忠心)이 기특하구나. 그렇다면 내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도록 도와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