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붉다 - 김혜경

어느 틈에 왔을까

왕눈이 저 사내,

백주대낮 십구 층 난간에 매달려

삼복에 등물 친 알몸

닳도록 훑는다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올라와

주먹만 한 눈망울 위아래로 굴린다

화들짝 나도 모르게

젖가슴을 가린다

능청스런 저 눈길 왠지 낯설지 않다

제풀에 뜨겁게 익어가던 고추잠자리

유유히 자리를 뜬다

나도 따라,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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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소스가 강렬하다. 유유히 자리를 뜨는 고추잠자리의 파장이 가슴을 휘도는 정감을 느끼게 한다. 등물 친 알몸으로 난간에 매달릴 힘이 없으면 잠자리가 아니리. 방황하는 마음에 이정표처럼 허공에 그린 날갯짓은 차라리 붉다, 붉지. 겁도 없이 화들짝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고추잠자리의 능청스러운 눈망울이 그립다. 바지랑대에 앉아서 날 놀리던 어린 시절의 고추잠자리도 붉었다. /이소애 시인